(3347)제76화 화맥인맥(6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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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석과 불재>
우석(장발)과 불재(윤효중)의 대립은 그 당시 상당한 화제였다.
대한 미협과 한국 미술가협회가 마치 여·야의 입장에서 다투는 것처럼 인식되기까지 했다.
불재가 당시 자유당의 2인자였던 이기붕씨를 찾아가 『장발씨는 미술계에서 야당적인 행동으로 화단을 시끄럽게 할 뿐 아니라 미술문화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우석의 서울대미술대학장 자리가 화근이라고 말했다는 정보가 한국미술가협회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이기붕씨가 『장발씨가 아무리 내성적이지만 그의 실제인 장발씨의 미술대학장 자리를 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불재를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이 말을 들은 한국미술가협회 회원들은 만송(이기붕)이 도량이 넓은 사람이라고 칭찬까지 했었다.
대한미협과 한국미술가협회가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와중에서도 나는 56년에 서울대 강당 벽화를 그렸다.
대학본부의 요청에 의해 미술대학에서 벽화를 그려 달라는 주문이 있어 교수들이 몇 차례 회합을 가졌다.
동양화로 할 것이냐, 서양화로 그릴 것이냐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지만 동양화로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그 일이 내게 떨어졌다.
무대 오른쪽엔 산수화를, 왼쪽엔 인물화를 그리기로 결정하고 산수화는 심산(노수현)이, 인물화는 내가 제작 책임을 맡았다. 나는 대학교의 벽화라는데 유념, 『청년도』를 그렸다. 이해는 서울대 벽화를 그렸을 뿐 아니라 내가 서울대에 근속한지 10주년이 되는 해여서 여러 가지로 뜻이 있는 한해였다.
57년 6회 국전 때는 전시 중에 동양학가 세 사람이 국전에 대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그것도 당시 화단의 중진이며 국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화가들이어서 그야말로 벌집 쑤셔놓은 격이었다.
이당(김은호)은 서울신문에 『선배의 도의를 찾자』(57년 10월21일), 소정(변관식)은 연합신문에 『공정성을 잃은 심사』, 정재(최우석)는 조선일보에 『편파적인 심사』를 기고, 불평을 토로했다.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초기 국전이 순수한 작품심사에 있어서는 공정했던 게 아닌가 싶다.
대한 미협과 한국미술가 협회의 암투도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시들해졌다.
자유당이 말기 현상을 보이면서 대한 미협도 기세가 꺾었다. 그래서인지 늘 검정색 지프를 타고 다니던 불재의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58년 7회 국전 때인가 불재를 심사장에서 만났는데 그가 먼저 인사를 청하면서 『월전, 좋게 지냅시다』하고 말을 붙였다.
그때 나도 『개인적으로 나와 좋고 나쁜 일이 뭐 있읍니까』하고 사감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아니, 뭐 꼭 사감이 있어서라기보다 괜히 서먹한 사이가 되어서 그렇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대 음악대 학장으로 있던 현제명씨가 내게 전화를 걸어 한번 만나자고 청했다.
현 학장하고는 수 인사를 하고 지내는 정도이지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약속한 함춘원 교수회관에 나가 봤더니 현 학장은 나에게 『불재를 서울대 미술대학에 취직 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천만 뜻밖의 일이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현 학장, 내게 무슨 인사권이 있읍니까? 장 학장과 친하신데 직접 이야기하시지 제게 왜 그런 부탁을 하십니까?』고 반문했다.
현 학장은 『장 학장은 워낙 대꼬챙이 같아서 말이 통해야지…. 당신이 알아서 좀 처리해 주시오』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어서 『불재가 좀 꺼들꺼들해서 그렇지 사람이야 좋지 뭐』하고 은근히 치켜세웠다.
나는 현 학장을 만나고 들어가서 장 학장에게 『현 학장이 불재를 서울대 미대에 취직시켜 달라고 그럽디다』했더니 장 학장은 한마디로 『그 사람 돌았군…』하고 일축해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불재가 간곡히 청해서 집 구경도 할 겸 삼선동 산잔등이에 있는 불재 집에 가보았다.
양옥으로 몇 채를 앉혔는데 그때만 해도 으리으리한 집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방안에는 서화·골동이 가득해서 볼게 많았다.
그가 집을 지을 때 남산 조선 신궁을 헌돌을 가져다 써서 풍수들의 입에 오르기도 했었다. 왜 좋은 집터에 하필 신궁을 헌 돌을 쓰느냐고 새집에 패가의 석재나 재목은 쓰지 않는 법이라는 충고를 했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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