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 가는 「미군정시대」연구열|한국사회과학 연구협, 장기과제로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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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실로 때늦은 감은 있으나 「미군정시대」연구의 집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 70년대 중반부터 몇몇 학자들에 의해 황무지 같은 이 시대 연구에 씨뿌려진 이후 극히 미흡하긴 하지만 몇 편의 선도적인 업적들이 나온 바 있으며, 또한 한국사회사학연구협의회(회장 박동서)는 금년부터 장기 연구과제의 하나로 미군정시대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정치학회·한국사회학회·한국경제학회 등 10개 사회과학분야의 학회가 참여하고 있는 이 협의회는 그 연구로서 ▲일제 식민지시대와 대한민국 시대를 연결하는 미군정시대에 있어서의 식민지적 체제의 청산과 점용 학문적으로 정리하며 ▲미군정시대라는 특징 있는 한 시대가 지닌 성격을 파악함으로써 해방 이후사 연구의 단서를 열며 민족분단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연구하려하고 있다.
1차 연도에는 현재 미정리 상태에 있는 이 시대에 관한 자료들을 발굴·정리할 예정인데 이 연구는 정치학·경제학·사회학·교육학·법학 등 여러 분야의 사회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협동연구로 진행될 전망이다.
미군정시대는 1945년 9월부터 48년8월15일까지-. 미군이 인천에 상륙한 것은 9월8일인데 남한에 군정을 실시한다는 뜻의 포고는 그 며칠전인 9월2일 미8군사령관 「하지」중장의 이름으로 발표됐고 9월6일에는 미군 선발사절로 「헤리스」준장 등 31명이 김포비행장에 도착, 일본 총독부의 고위 관리와 회담한 바 있다.
미군정시대는 다시 45년 9월부터 47년 6월3일까지 약 1년8개월 동안 미군이 직접 모든 정권을 장악하고 통치했던 기간과, 이른바 남조선 과도정부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한국인들이 미군의 임명을 받아 행정을 폈던 기간으로 단계적인 구분을 할 수 있다.
미군정은 3년 미만에 걸쳐서 한국 사회를 지배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미친 영향은 3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이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심대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비한 상태다. 실질적으로 연구실적을 내놓은 전문학자는 다섯 손가락을 꼽기 힙들 점도-. 그나마 객관적인 분석이나 실증적인 연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편 외국학자들의 연구실적을 살펴보면 ▲미국학자 ▲일본학자 ▲제3그룹으로 나눠볼 수 있다.
미국학자들은 거의가 선교사 등 한국과의 연고관계가 아니면 정책기관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미국적 사고의 틀이나 이데올로기적 해석으로 한국을 소개한 것이 대부분이다.
일본 작자들은 구 총독부관리와 좌파 지식인(조총련계 학자포함)으로 구분된다. 총독부 관리들은 해방이후의 혼돈을 과장함으로써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폐단이 있으며 좌파 지식인들은 남로당·지식인 중심의 기술이란 흠을 가지고 있다.
제 3그룹이란 학자라기 보다는 언론인들인데 이들은 르포나 기행문 형식을 통해서 사건 「자체」를 기록함으로써 사료로서의 가치를 어느 정도 보존하고 있다.
그러면 국내에서 미군정에 대해서 보다 철저하고 본격적으로 객관성 있는 연구를 실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진덕규 교수(이화여대·정치학)는 무엇보다도 미군정이 영향용 미친 오늘의 한국적인 사의상황과 지적인 분위기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즉, 미군정에 대한 비판은 반미적이고, 반미적인 것은 반국가적일 수 있다는 극단적인 양분논리가 이승만 체제하에서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당시 미군정에 의해 권력구조의 핵을 형성했던 일부 자유당 치하의 정치 엘리트들이 고도화 권력의 효율성과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이러한 단색의 관념을 널리 유포시켰으며 국민들은 그것을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이라는 것-.
더욱이 그 당시에 중요한 활동을 담당했던 몇몇 인사들이 여전히 상담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그만큼 연구를 객관적으로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고조되는 미군정시대 연구열은 「우리 것」에 대한사회과학을 정립하자는 학계의 전반적인·반성과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아무튼 이러한 연구의 관심도에 맞추어 어려운 연구환경이 보다 개선되고 학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효율적인 협동연구가 이루어져 이 시대 연구가 속히 진척되기를 학계는 바라고 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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