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6)<화맥인맥-제76화>(65)고암 이응로|월전 장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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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암(이응로)은 190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19세까지 홍성에서 집안살림을 돕다가 그해 5월 29일에 상경, 해강(김규진)문하에 들어갔다.
해강 문하에서 공부할 때 그는 죽사라는 호를 썼다. 선전에도 묵죽을 출품, 몇 차례 입·특선했다. 그는 해강에게 그림뿐 아니라 글씨와 사군자도 배워 서예와 묵화에도 일가를 이룬 터다.
고암은 한때 해강 문하를 떠나 전주에서 개척사라는 간판점을 내고 그림공부도 하면서 식생활도 해결했다.
그는 35년에 동경에 건너가 일본 남화의 2대가의 한사람인 송림계월을 찾아갔다. 하지만 송림계월은 고암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고암은 해강에게서 공부하던 보따리를 몽땅 들고 가 송림집 대문에서부터 현관까지 그림으로 깔아놓고 허리를 조아리고 서있었다. 행여 그림이 바람에 날릴세라 돌로 눌러놓은 채 송림의 반응만을 기다렸다. 고암의 행동이 범상치 않았던지 송림이 나와보았다.
고암은 송림이 나오자 『저는 조선의 해강 문하에서 그림공부를 하다가 온 이응노인데 새로운 그림공부를 하러왔읍니다』고 말했다.
그림을 쭉 살펴본 송림도 고암의 성의에 감복, 제자로 받아들였다.
고암은 이처럼 매사에 활동적인 사람이다. 농담도 잘 한다.
고암은 해방 후 회현동 적산가옥에 살았는데 손님이 들끓었다.
단골손님은 소전(손재경)과 제당(배렴)-. 나도 가끔 끼었다. 그는 그 때 이화여대에 출강하고있고 사설강습소도 경영해 여학생들이 많이 찾아왔다.
지금 파리에서 함께 살고있는 부인 박인경 여사도 그 때 고암에게 그림공부를 하던 여대생이다.
고암은 어찌나 부지런한지 잠시도 앉아 있지 않고 쏘다녔다. 그림도 다작이어서 언제든지 화실에는 습작해놓은 작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잠이 없어 밤에도 불을 켜놓고 그림을 그렸다. 자정 무렵에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는 새벽에 일어나 장작을 팼다.
그는 남농(허건)과 자별하게 지내 남농이 서울에 올라오면 으례 대취했다.
그 때도 국전이 열려있을 때인데 남농이 상경, 소전·제당·고암·남농이 나와 함께 어울렸다.
그날의 스폰서는 모 은행지점장이었다.
다동 어느 술집에 초대되었는데 술이 한 순배도 채 돌기 전에 고암은 벌써 흠이 나있었다. 고암은 술자리가 없어서 걱정이지 술자리만 생기면 최고로 흥을 돋우는 사람이다.
그 날도 취흥이 도도해지자 고암이 어느새 마담에게 지시해서 지필묵을 준비해 놓고 석상휘호를 했다.
소금이 먼저 글씨로 분위기를 잡아 괴석·모란 등 자기가 좋아하는 소재로 한 가지씩 그려 합작을 해놓았다.
눈치 빠른 마담이 장구를 치다말고 내실로 들어가 하얀 치마를 입고 나왔다.
고암이 하얀 치마를 벗겨서 북통 위에 턱 걸쳐놓고 붓을 휘둘렀다.
소금이 화제를 어떻게 썼으면 좋겠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거 있쟎아…「취객집나삼 나삼수수열부석 일나삼 단공은정기」(술 취한 객이 비단치마를 잡으니/비단치마가 어이없이 찢어 지누나/비단치마 한 벌 찢어지는건 아깝지 않지만/다만 두터운 정이 끊어질까 두렵소이다) 말이야-』하고 부추겼더니 소전이 무릎을 치면서 일필휘지 마무리를 지었다.
고암이 구라파에 갈 때는 주한 서독대사관의 「헬스」란 사람이 힘을 썼다. 「헬스」는 미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남달리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 미술에 관심을 두고 전람회라는 전람회는 모두 찾아다녔다. 「헬스」가 고암과 친해 유럽진출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고암은 술자리에 앉기만 하면 『우물안 개구리처럼 이 좁은 나라에서 큰 소리칠게 아니라 넓은 바닥에 나가서 활동해야한다』고 열을 올렸다.
고암의 꿈은 바로 파리 화단에서의 활동이었다. 그러나 그의 뜻과는 달리 고암은 처음 서독으로밖에 갈 수 없었다.
그가 유럽 행을 결정했을 때 그의 수중에는 여권하나 뿐 무일푼이었다.
파리가 아닌 베를린에 간 고암은 당장 목에 풀칠할 계책도 없었다.
이 때 서독 대사(손원일 제독) 부인이 미술에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고암을 좀 도와줬다. 손 제독 부인이 이리저리 주선하여 그가 파리에 갈 수 있는 비행기표와 얼마간의 생활비를 마련해주었다.
이래서 고암이 꿈에도 그리던 파리생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고암이 몇 년 전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치사건에 관련되었다는 기사를 읽고는 세상일이란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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