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손발 묶인 원고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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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인들이 받는 원고료가 올해로 4년째 오르지 않을 것 같다. 4년 동안 물가가 최소한 1백% 이상 올랐다고 한다면 문인들은 그들의 노력 댓가를 가만히 앉아서 반 이상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금년부터 실시되는 원고료 소득에 대한 과세제도가 겹쳐 조건은 더욱 악화된 셈이다. 원고료가 오르지 않은 것은 문학작품을 수용·발표해주는 문예지들이 심한 운영 난을 내세워 원고료를 올리지 않고 있는 데다 문인들의 창작을 지원해준다는 문예진흥원도 예산부족을 내세워 원고료 지원액을 동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인들이 현재 받고있는 원고료는 소설·희곡·동화·문학평론이 원고지 1장에 최하 8백원에서 최고 1천 5백원까지이고 시·시조·동요·동시는 1편에 최하 9천원에서 최고 1만 5천원까지다. 수필·번역의 경우는 더 떨어져 1장에 최하 6백원에서 최고 1천 2백원이다(일부 종합지·여성지·계간지 제외).
원고료의 격차는 보통 A·B·C·D 4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원로·중견문인에게는 대체로 A급(소설의 경우 1장에 1천 5백원, 시 1편 1만 5천원)으로 주어지고 신인급에는 B급(소설 1장 1천 3백원, 시 1편 1만 3천원)이나 그 이하로 주어진다.
원고료의 구성은 소설의 경우 문예지 자체부담이 40%, 문예진흥원 보조가 60%선이고 시는 문예지가 25%, 문예진흥원지원이 75%정도다.
일부 종합지·여성지의 경우 소설은 1장에 2천∼3천원, 시는 1편에 2만∼3만원까지 지급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전체 문학작품의 80% 이상을 문예지들이 소화하기 때문에 전체고료에는 큰 영향을 못 준다.
문예진흥원의 고료 지원액이 60∼75%를 차지한다고 볼 때 원고료가 인상되지 않은 직접적인 원인은 문예진흥원의 지원액 동결에서 찾아진다.
문예진흥원은 극장·고궁·박물관 등의 입장료에 포함시키는 문예진흥기금을 모아 각종 문화활동을 지원한다. 지난해 기금총액은 42억원. 그 중 원고료지원에 돌려진 것은 9천 4백만원이었는데 전체의 2.2% 정도다.
『79년 이후 극장계의 불황으로 기금이 늘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지방의 문화재보수·예총단체지원금 등 쓸 곳이 많아 원고료지원액을 늘릴 수 없는 형편입니다.』
문예진흥원 한 관계자는 4년 동안 원고료 지원금을 인상하지 못한 배경을 이같이 설명하고 있다.
문예진흥원에서 지원액을 늘리지 않은 것이 문예지들에게는 지원액과 자체고료의 비율이라는 틀을 내세워 고료인상을 않아도 좋은 구실이 되기도 한다.
문예지들은 지난 79년 1천 2백원씩 했던 책값을 82년 2천 5백원까지 인상해왔다.
그러나 그같은 인상액은 지대·인쇄비·인건비 등의 상승 때문에 원고료 인상 쪽으로는 돌려지지 못했다고 문예지 쪽에서는 말한다. 고료에 관한 한 문예진흥원 쪽에 기대기보다는 문예지 쪽이 어떻게 해서든지 인상하도록 애써야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문예지들은 「지원액이 늘지 않았다」는 핑계에 너무 안주해왔다는 인상이 짙다. 이와 관련해 송지영 문예진흥원장의 다음과 같은 말은 시사하는바 크다.
『매년 문인들로 구성된 고료 지원문제 심의위원회가 열리는데 그 때마다 문예지 측의 사정이 이야기되면서 고료 인상문제가 난관에 봉착한다. 문예진흥원에서 일방적으로 인상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흥원 쪽에서 고료인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원고료수준은 진흥원과 문예지들의 상호작용 속에 고정되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서 고통받는 것은 문인들이다. 『한 달에 단편 하나를 완성하려면 피를 말리는 작업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80장 짜리를 하나 써내도 수입은 12만원밖에 안됩니다. 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한 중진작가의 말이다.
신문연재를 하거나 인기작가로 인세수입이 있는 소설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문인이 글만 써서는 살수 없게 돼있다.
4년 전만해도 원고료수입으로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었던 문인들도 이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출판사 등에 자리를 구해 나가고 있다. 생활에 매달려 좋은 작품을 써낼 여유를 잃고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문화계도 마찬가지겠지만 문인들에게 주어지는 악조건은 그 도가 더 심하다. 문화정책이라는 차원에서의 개선이 시급하다. 펜클럽 한국본부(회장 모윤숙)는 20일 정기총회에서 원고료를 최소한 산문 1장에 3천원, 시 1편에 3만원은 되도록 문화당국과 문예지 등에서 힘써줄 것과 작가들의 원고료 소득에 대한 과세를 오는 86년까지 유보해 줄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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