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김정일 면담 이후] 정 통일 면담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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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7일 평양 면담은 남북 간 사전 물밑 교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에 확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어 막판까지 마음을 졸였다"는 게 당국자의 말이다.

‘판박이’북한 신문
북한의 4대 일간지인 노동신문·민주조선·청년전위·평양신문(위부터)은 18일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면담 소식을 1면에 같은 사진배치와 제목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촬영=연합]

◆ 면담 성사시 '특사' 전환=정 장관은 방북 전 기자들에게 "6.15 당국대표단장으로 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대북 특사 임명을 받고 면담 자료까지 준비했지만 연막을 쳤다. 면담을 마친 뒤에도 정부는 이를 숨겼다.

그렇지만 당일 오후 6시30분쯤 북한 중앙통신은 정 장관을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라고 보도했다. 당국자는 그제야 "정 장관은 당국대표단장과 대통령 특사 두 자격으로 갔다"고 확인했다. 면담 성사시 특사로 신분이 전환되는 복안을 갖고 갔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3년 1월 임동원 특사가 방북했지만 김정일 면담이 불발됐던 점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미리 특사로 밝히고 갈 경우 떠안아야 할 부담을 피하려 묘안을 짠 것이란 설명이다.

◆ 면담 사진 공개 안 해=통일부는 정동영.김정일 단독 면담 장면을 담은 사진을 배포했다 회수하는 소동을 벌였다. 임동원.박재규 전 장관의 김정일 면담 때와 달리 오찬 장면과 서서 찍은 기념사진만 공개했다. 그렇지만 북한 중앙TV는 면담 장면을 방영까지 했다. 여기에는 기록 등을 위해 배석한 관계자들의 면면이 드러났다. 북측은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한 명이고, 남측은 국정원 간부 두 명이다. 당국자는 "관계 당국 인사의 신원이 드러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사진을 공개하지 않은 배경을 설명했다. 통일부 당국자 사이에선 장관의 면담에 자신들이 배제된 데 대해 볼멘소리가 나왔다.

◆ 주석단에 앉은 한나라당 의원=6.15 통일 대축전에 참가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19일 "평양에선 한나라당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이 개막 연설 때 '한나라당도 여기에 왔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북한은 최고위원인 원 의원을 주석단에 앉도록 배려했다. 또 이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원 의원에게 "한나라당과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듣고 있다"며 "8.15 때 서울에 가면 한나라당이 환대해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영종.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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