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외국인들에게 우리 고궁 제대로 알리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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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역사학자인 백종율(46)씨는 1995년 프랑스 몽셸미셸을 관광할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풍광이 빼어나서가 아니었다. 정작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관광 가이드의 해박한 지식이었다. 노르망디반도 앞바다의 외딴 섬에 있는 작은 수도원을 세 시간이나 돌아다녀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프랑스사를 전공해 박사 학위까지 받은 백씨였지만 가이드가 들려주는 얘기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나라의 역사를 새롭게 배웠다"고 했다.

2년 전 백씨는 외국 손님에게 서울 관광을 시켜줄 일이 생겼다. 인터넷을 통해 경복궁.인사동.민속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관광상품을 택한 뒤 함께 투어에 나섰다. 경복궁 관광에 할애된 시간은 40분가량. 그러나 "경복궁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빈약한데다 재미도 없어 그 시간조차도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성균관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석사, 아이오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성대와 한림대 등에서 강의 해온 백씨는 이 같은 차이를 자신에게 찾아온 새로운 기회라고 봤다.

"우리나라엔 외국인들의 발길을 끌어당길 관광자원이 많지 않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나마 있는 문화유산을 제대로 설명해 흥미를 유발시킬 콘텐트는 더욱 빈약합니다."

그래서 백씨는 대학에서 실시하는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학생들이 현장 탐사를 할 때는 방문지에 대해 철저히 공부를 하고 가지요. 덕분에 문짝 하나, 기와 하나도 가볍게 넘길 수 없게 됩니다. 역사학도들은 자기들끼리만 알고 넘어가지만 저는 이런 이런 정보들을 상품화해보기로 했습니다."

백씨가 처음 착수한 분야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 등 조선의 고궁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사료를 뒤져 관련 정보를 모으고 얘깃거리를 찾아냈다. 한국사와 고미술을 전공하는 교수들에게 자문도 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고궁들은 흥미있게 들을 만한 사연들을 예상 외로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경복궁 관광 코스를 40분에서 2시간30분으로 늘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백씨는 지난해 '클리오 투어스'라는 역사.문화 탐방 전문 여행사를 차려 외국인들을 주 대상으로 국내 고궁과 박물관 등을 안내하고 있다.

백씨는 70년대 공화당 당의장을 지냈던 백남억(2001년 작고) 전 국회의원의 아들이다.

글=왕희수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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