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기술사 이봉인 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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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하는 늙은이를 취재하러 왔다고요? 거, 중앙일보를 보니까「젊은이 페이지」라는 게 있던데, 내 기사는 거기에다 써 주쇼. 과거의 경력보다 장래 계획이나 얘기합시다.』
기술사 이당 이봉인 옹(82·주식회사 우대 기술단 회장·서울 화곡동 46의10).
1900년 10월26일생.
분명 82세인데, 아무리 보아도 60대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약간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보일락말락한 눈 밑의 잔주름을 빼면 영락없는 초로(초로)의 신사다.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회색양복. 짙은 갈색 T셔츠, 무늬가 요란한 흰색 양말, 납작코 검정 구두.
『10년 전 서울대 공대 제자인 안치섭 사장(46)이 같이 일하자고 해서 이 회사에 취직했지. 아침10시에 출근하여 하오2시30분까지 일해요. 하루도 결근한 적이 없어. 설계도면도 보고 현장출장도 나가지요.』
이 옹이 일하는 우대 기술단은 각종 토목공사의 경제성조사·실시 설계·감리 등을 맡는 기술용역 회사로 직원 수는 1백명.
이 옹의 월급은 85만원.『요즘 젊은이들은 적극적이고 공부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작성해 온 설계도면을 보고 탄복할 때가 많지.』
이 옹은 젊은이들과 일하면서 그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지금도 외국의 전문서적을 구해 계속 공부하고 있다.
신문에 외국의 최신 건축물이나 공법이 소개되면 모두 스크랩해 두고 본다는 것이다.
이 옹은 54년 전 경성고등공업학교 토목과를 졸업, 평양철도 건설사무소에 들어간 뒤 80평생을 줄곧 토목기술분야에서 일해 왔다.
해방 후 46년 교통부 초대 시설국장, 48년 내무부 건설국장을 지냈고, 52년부터 78년 사이 대한토목학회·대한기술총협회·대한측량협회 등 3개 단체의 회장을 두루 거친 토목기술계의 원고시(기술과)위원회·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위원회 등 모두 22개 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이 계통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 기술사 제도는 내가 제안해서 만들었지. 국내의 큰 공사 치고 간여 안한 게 없어. 우리 기술 인들이 이 나라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면 항상 즐겁고 흐뭇하지]
이 옹의 자녀는 모두 4남4녀. 아들4 형제와 2녀 성숙씨(45·미국)부부 등 6명이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공학도 집안이다. 장남 민환씨(58)는 현대건설 부사장, 3남 윤환씨(50)는 예비역 해군준장, 4남 승환씨(30)는 아주 공대 교수로 재직하다 현재 미국에 유학중이다.
2남 진환씨(53)만 사업을 하다 건강이 나빠 현재 집에서 쉬고있는 상태.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나이도 잊는 법이지. 언제나 젊은 기분으로 살면서 죽을 때 까지 일할 생각이야. 일하는 인생은 즐겁거든』
이 옹의 눈길은 다시 설계도면으로 집중된다. <글 정일상기자 사진 이호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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