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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방송광고의 참을 수 없는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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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공영방송 KBS 사장이 이번에 들고 나온 경영 혁신안을 두고 말이 많다. 지난해의 엄청난 적자 때문에 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재원을 확보하는 데 광고 제도를 수정하는 방안이 들어 있어 논란이 된 것이다. 부실한 회사 경영을 합리화하고 비용을 줄이는 데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고 특별한 묘방이 없다면 이 여러 가지 방안을 다 동원해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으로 방송 수용자의 권리 내지는 시청자의 복지에 관한 게 있다. 즉 시청자에게 베푸는 공공의 서비스로서 지상파 방송이 침해해서는 안 되는 수용자의 권리 중에는 원하지 않는 광고방송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 권리는 현실적으로 보장받기 매우 힘들며 추상적인 원칙으로 남아 있기 일쑤다. 왜냐하면 연이어 방송되는 TV 프로그램에서 자기가 원하는 프로그램만을 따로 떼어내 보고 광고방송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TV 시청의 일상적 관습상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KBS 같은 지상파 국영방송은 준조세 형태로 전기 사용료와 함께 징수하는 시청료를 그 주요한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광고 의존도를 될 수 있는 한 줄여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뒤따른다. 광고방송의 절대적 양을 줄이고 원하지 않는 광고를 어쩔 수 없이 보게 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시청자의 물리적.시간적 소모와 예상될 수 있는 정신적 소모 내지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요청된다는 말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광고방송의 시간 제한(현재 우리나라 방송법으로는 광고방송 시간이 프로그램 방송 시간의 10%를 넘으면 안 된다)이나 광고방송 시간대 제한(스포츠 방송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방송을 끼워 넣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프로그램 전후의 시간에 배치해야 한다)의 최소한의 법적 장치는 이러한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시청자 모두를 천치로 여기지 않는 한 공공방송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다.

그런데 이를 근본적으로 무시하려는 의도가 공공연하게 발표된 것이다. 나는 공익성과 공공성을 모범적으로 담보해야 할 위치에 있는 국립방송의 최고경영자가 재정적자 보전을 이유로 간접광고 규제를 풀어 달라고 요청하고, 중장기적으로 중간광고.광고 총량제 등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을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배짱과 시니시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의아하다.

그러나 한편 내가 그 위치에 서면 마찬가지로 참을 수 없는 유혹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방송은 제한된 시간을 잘게 쪼개어 가능한 한 비싸게 파는 사업이다. 방송광고는 광고주에게 시청자들을 팔아넘겨 이익을 챙기려는 장사다. 피 튀기는 시청률 경쟁도 이 때문이 아니냐.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 시청자들이 한눈파는 사이에 거추장스러운 법령을 고쳐버리고 간단하게 광고방송 단가를 올려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끌리지 않겠는가. 선택한 프로그램을 조용하게 즐기려는 시청자들의 몸과 마음을 느닷없이 공격해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폭력적 중간광고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간접광고(PPL)의 점차적 확산이다.

한국의 공영방송 프로그램은 곳곳에 광고주가 선전하고자 하는 물품이나 그 물품의 이미지, 또는 상표들이 교묘하게 배치되는 간접광고의 정복 대상이다. 누군가 자본주의가 낳은 최상의 예술은 광고라고 했지만 정상적 방송 프로그램이 상업광고와 뒤섞여 서로 구별할 수 없게 되고 나아가 광고가 현실을 뒤덮어 마침내 현실을 대체해 버리는 사회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과 정반대다.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