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모신 시어머니"…아직은 서먹서먹 당정협조|"잘 보이면 뭐 있다"…눈치작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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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종전까지 다분히 민정당의 일방적 구호의 인상을 주던「당정협조」라는 말이 요즘에는 행정부에서도 차차 실감나게 받아들여 지고있다. 『당에 잘못 보이면 큰일난다』는 생각이 관료들에게 널리 퍼지는가 하면 당과의 협조가 업무의 일부라는 인식들 보이는 부서도 나타나고 있다.

<부처따라 반응달라>
이런 현상은 개각과 전두환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 특히 『집권당의 역할과 책임을 늘리는 정치의 구현』이란 국정연설의 발언 등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아직은 당의 참여를 「간섭」 「귀찮은 요구행위」라고 불평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당정협조에 관한 행정부의 풍향이 꼭 고르다고만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경우 공무원들은 적극적인 당정협조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석이나 은근한 자리에서는 아직도 『귀찮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당의 참여를 못마땅해하는 말이 나온다.
또 고위직일수록 수긍하는 자세이고 하위직일수록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장관에 따라서도 다르다. 민정당원이 장관인 부처와 그렇지 않은 곳의 분위기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장관의 개성·스타일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다만 유창순 총리내각은 출범 초에 전대통령으로부터 당정협조를 잘 하라는 지시를 재삼 받아 「협조강화」라는 방향은 이미 정립된 셈.
그러나 당정협조를 「즐겨」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행정부에 정착된 건 아니라는 게 중평이며, 그것은 앞으로 하기에 달렸다는 얘기들이다.
현재론 「방침」이니까 따른다는 속극적인 자세가 일반적인 경향.
한 차관급 공무원은『행정부가 입안한 정책이 집권당에 의해 보완되고 당정간의 협조과정에서 한차례 걸러지는데 따라 그 정책의 타당성이랄까 지지기반이 확대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협조필요론을 들면서도 『어떤 관료가 자기업무를 재가과정도 밟기전에 밖으로 돌리는걸 좋아하겠느냐』고 했다..
「방침」에 따라 각 부처는 요즘 협조에 적극적이다.
대통령에게 보고한 올해 업무계획을 재빨리 당에 보내는가하면 고위직공무원의 당출입도 뻔질나다.
특히 최근 행정 각 부처의 기획관리실장-당 전문위원이 1대1 실무협조의 전담 창구가 되면서 대화는 더욱 잦아졌다.
다만 아직은 양쪽이 다 익숙지 못한 탓(?) 인지 다소간의 잡음이 노출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당이 발표해 김샜다>
예컨대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는 「의료보험관리체계 일원화에 관한 전날의 민정당 발표가 문제가 됐다.
천명기 보사부장관은 당이 정부정책을 입안단계에서부터 협의하라고 해서 실무자의 계획단계에 있는 안을 당에 보냈더니 그것이 그대로 새나가고 말았다고 불평했다.
보사부 측의 설명으로는 관계부처와 협의도 안거쳤고 최종결재도 안난 안을 당에서 발표하거나 보도돼버릴 경우 나중에 그 내용이 바뀌거나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는데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 문제에 관해 이날 국무회의는 특별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채 다만 당정협조가 어떤 원칙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오갔다.
당정협조의 방법을 놓고도 잡음이 생긴 일이 있다. 당과 농수산부가 협의해 추곡수매기간을 한달간 연장하고 정부양곡 상품미 반출을 중단한다는 안을 마련했는데 지난 20일 당이 그 최종안만을 받아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린 것. 그런데 당이 발표한 문안까지도 농수산부가 작성한 것이었다.
각 부처는 부처대로 입장이 있는 것이고 실무자로서는 「일의 보람」도 느껴야 하는 것인데 행정부는 일만 실컷하고 영광은 당이 독차지하겠다는 발상은 문제라는 불평이 없을 수 없다.
또 당정협조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당에만 협조할 것이 아니라 당도 정부에 협조하는 상호관계체계가 되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1일 민정당에서 입시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문교부 쪽에서 발끈.
문교부에서는 민정당이 전면재검토의 방침을 세운 바는 없다하더라도 간부들이 입시문제나 문교정책을 비관하기 전에 문교부와 상의하는 자세를 보여주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서운해했다는 얘기다.
민정당 출신이 장관을 맡게된 재무부·동자부·통일원 등은 타 부처보다 특히 당정협조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
나웅배 재무부장관은 『정당정치라는 차원에서 당이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주요정책을 세우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부하직원들에게 당과의 원만한 관계를 강조.
나장관 스스로도 『점심시간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언제나 민정당 구내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다』고 할 정도로 친정쪽에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
풍토가 세다(?)는 평이 있는 내무부에도 이춘구 의원이 차관으로 오면서 「당우위」를 실감케하는 일들이 자주 있다.
90%는 정부쪽으로
더구나 이 차관이 부임하자마자 각 도 순시를 하는 등 지금까지 역대 차관들과는 다른 업무자세를 보여 내무부에 당우위 바람이 분다는 얘기다.
당정협조를 적극적으로 하되 협조의 한계와 기준이 무엇이냐는 회의적 반응은 여전히 있다.
심지어 일부 실무자들은 『새로 시어머니를 모시게 됐다』는 얘기도 한다는 것.
인적구성이나 경험축적에 있어 당이 정부보다 우월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협조」란 이름으로 당 의사를 강요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가진 공무원이 많다.
그래서 당정협조의 방향에 대해 이진정무1장관실 보좌관 같은 이는 『당은 통치전략에 입각한 정책방향을 제시해 주고 구체적인 정책수립은 정부 쪽에서 90%마련하고 나머지 10%를 당에서 국민적 감각으로 채워주는 식의 협조가 바람직한 형태』라고 얘기한다.
또 최근 국장급 3명을 당이 뽑아간 사례 등을 보고 일부에서는 『공무원 신분보장을 한다고 하면서 당사자와 기관장에게 사전에 알리지도 않고 마음대로 뽑아가면 어떻게 하느냐』 고 솔직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다만 일단 당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경우 최소한 한 직급 승진해서 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낙관도 있어 꼭 그렇게 싫어하는 경향은 아닌 듯.

<협조냐, 간섭이냐>
민정당 속에서도 협조의 한계와 방법에는 꽤 신경을 쓰는 편.
거의 모든 정책사항을 협조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전문위원 1명이 아무 보조인력도 없이 많게는 2개 부처와 2, 3개 외청 상대로 깊이 있는 「협조」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있다.
한 당직자는 『당이 방대한 전문인력의 뒷받침을 받고있는 정부에 대해 정책수립 때마다 협조하려 들다간 자칫 「간섭」이 될 우려도 있다』고 시인.
윤석순 사무차장은 추곡가 결정 등 중대한 사항은 협의하고 그 밖의 사항에 대해서는 당으로서는 기본정책방향만 제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당정협조에 한계를 그으려한다.
이 같은 원칙 때문인지 최근 미가종합대책 발표문제와 대입제도에 대한 당 정책관계자들의 성급한 논평은 당내에서도 상당히 질책을 받았다는 것.
당으로서도 정부가 가장 신경을 쓰는 정책자료의 보안유지 등을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문제는 정부측이 얼마나 성의를 더하느냐에 달렸다는 생각도 하고있다. <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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