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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에게 책 읽히고 싶어 만들다 보니 벌써 500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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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12면

심만수 대표는 “부패 구조, 분단 구조를 깨려면 도약해야 한다. 지금처럼 곁가지 가지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싸울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춘식 기자

문고판 도서는 ‘우리집 도서관’이다. 프랑스 ‘크세주’, 일본 ‘이와나미’문고는 4000~5000권 이상 출간됐지만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200~300호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살림지식총서 500호 출간한 살림출판사 심만수 대표

그러다 최근 살림출판사가 살림지식총서 500호 『결혼』을 냈다. 500권 모두 국내 저자라는 기록도 세웠다. 심만수(사진) 대표를 만났다.

-회사 웹사이트에 가 보니 살림의 정신 중 하나로 ‘치우치지 않는 시선’을 들고 있다.
“어떤 분들은 나이가 들면 신선이 된다고 그러는데, 저는 오히려 좀 치우치고 있다. 뭔가 좀 애가 타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

-예컨대 어떤 ‘치우침’이 있는지.
“저의 치우친 지론은 우리 병사들에게 전쟁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거다. 역사의 뼈대인 전쟁사를 통해 국가와 개인의 승패 원인을 알게 된다. 전쟁사를 통해 자동적으로 도대체 ‘인간이 뭘까’ ‘인류가 뭐냐’를 공부하게 된다. 그다음엔 ‘지금 현재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지금 나는 뭔 일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으로 자기반성을 하게 될 것이다.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된다.
어떤 책에 보니까 ‘머릿속에 뭔가 드니까 전투도 잘한다’는 말이 있었다. 나라에서 병사들이 책 읽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줘야 한다.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우리 소중한 자식들에게 괜히 쓸데없이 사역이니 뭐니 시키지 말아야 한다. 독서로 조국애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심어 줘야 한다.
그러지 못하니까 ‘부모님 건강하신가’ ‘고향 땅 집에서 농사는 어떻게 하나’··· 우스갯소리처럼 ‘소는 누가 키우나’를 걱정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뭘 한다는 것에 대한 철저한 신념이 없으니까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가 스위스를 침공하지 않은 것은 스위스가 중립국이어서가 아니라 군대가 강해서였기 때문이다. 강한 저 나라는 건드려 봤자 골치만 아프기에 건너뛴 것이다. 책이 강군의 길이다.”

-뭐가 애가 타는지.
“시민으로서 얘기하자면 사회가 애가 탄다. 뭐든지 싸우기보다는, 내일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아가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그리스 시대의 소피스트들이 부활한 느낌이다. 소피스트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수사학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본질이 아니라 주변적인 문제를, 정론이 아니라 궤변으로 다루는 것은 문제다. 그 결과 이념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것들이 이념 행세를 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이데올로그’ 기질이 있지만 이념에 종속되지는 말아야 한다. 사회가 이원화되는 가운데 국가가 매우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다.”

-예를 든다면.
“세월호 침몰 참사만 해도 본질이 분명히 있는데 곁가지를 가지고 결론을 내리려 하고 있지 않나. 부패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구조화됐다. 구조화라는 것은 무섭다. 자신이 부패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상당수 사람이 마치 자기가 대단한 정치가가 된 것처럼 정치가의 잣대로 세상을 보고 있다. 잘못된 거다. 저 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삶의 본질, 사람의 근본에 대해 일단 깨닫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저는 잘난 거는 하나도 없지만 ‘본질이 뭘까’ 이런 생각은 한다. 삶의 본질 중에서도 보편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개인의 자유나 행복 같은 고귀한 인류 보편의 가치가 있다. 한데 북한의 우리 동족이 말도 안 되는 ‘왕조’에 포로로 잡혀 있다. 동족이 보편성을 떠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슬픔에 잠겨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망각하고 있다. 역시 큰 병에 걸린 것이다.”

-그런 고민을 책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
“왜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부패가 구조화됐을까. 우리는 왜 위에 있는 동포의 아픔에 대해 망각하고 정치논리로만 바라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책도 자연히 그런 반성에 따라 만들게 된다. 제가 무슨 좌(左)다 우(右)다··· 이런 생각은 전혀 없다. 일단 사실 자체를 있는 그대로 알리는 책 출간에 몰두하는 편이다.”

-출간 목록을 보니 유명 작가들이 많다. 비결이 있는지. 자금력인가 친화력인가.
“옛날에 낸 책들이 그랬다. 제가 ‘문예중앙’에서 10년 편집자로 있을 때 자연히 우정이 생겼다. 돈하고 상관없이 얼마든지 책을 내고자 하면 낼 수 있었던 그런 관계였다. 지금 우리 회사는 문학작품을 그리 활발하게 출판하지 않는다. 지금은 종합출판사라고 할 수 있겠다.”

-스테디셀러는 몇 종이나 되는지.
“하루에 단행본이 300종 이상, 살림지식총서도 100종쯤 움직인다. 하루에 400~500종이 1~3부라도 주문이 들어온다.”

-출판인으로서 고민은.
“살림출판 책이 한 2000종 정도 된다. 매번 책 낼 때마다 희망과 좌절의 딜레마에 빠진다. 매체에서 문제작으로 취급을 받았으면 하는 희망, 좀 팔렸으면 하는 희망이다. 조금 팔리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책, 아니면 경영에 좀 도움되는 책… 이 둘 중 하나라도 됐으면 좋겠는데 둘 다 비켜 가는 경우가 많다.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래서 요즘은 ‘문제작이 아니어도 좋다’ ‘많이 안 팔려도 좋다’ ‘책에 사랑을 담자’는 항심(恒心)으로 일하고 있다.”

-살림지식총서를 구상한 계기는.
“아까 말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찾아낸 게 문고였다. 사실 저는 ‘문학전집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일보 다닐 때 배운 일이다. 당시 문학전집 4종을 냈다.
문고를 제작하려고 보니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다. 출판에 대해 비교적 잘 아니까 전략을 꾸몄다. 최근에 가격을 4800원으로 올렸지만 1만원짜리 한 장으로 세 권을 살 수 있게 10년 동안 3300원으로 가격을 고정했다.
처음에는 살림지식총서를 병사들이 읽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해병대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하고 제대한 오랜 친구가 있어 알게 모르게 군대문화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어서 도움이 됐다. ‘군대 가면 2년 동안 썩는다’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우리 자식들이 제대하고 복학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 엄청 도움이 될 내용을 우리 문고에 넣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500호가 됐다. 우리 선배들은 산업화 혁명을 성공시켰고 우리 또한 민주화 혁명을 성공시켰다. 그 어려운 일들을 성공시켰는데, 한번 마음 먹으면 ‘군대 가면 썩는다’는 말은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식산업의 핵인 출판업은 창조경제의 엔진이 될 수 있다. 좋은 제언이 있는지.
“저는 굉장한 낙관주의자인데 출판업의 미래에 대해선 전혀 낙관을 못 하겠다. 우선 문명 자체가 종이문명에서 정보기술(IT) 문명으로 넘어가 버리지 않았나. 출판업에 길이 있다면 기업가들이 국가에서 하지 말라고 해도 목숨 걸고 할 거다.”

-5년 후, 10년 후 나의 모습은.
“좀 더 치우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외로도 진출할 거다. 지금 한국이나 동북아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세계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 제 욕망은 대한민국 침체 극복과 동북아를 세계에 알리는 데 책으로 일조하는 것이다. 5년 후, 10년 후에도 저는 진정한 자유인, 진정한 세계인이 되기 위해 책을 만들고 있을 거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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