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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보약과 알부민 주사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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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화기 질환>최규완<서울대 병원 소화기 내과>
아마도 오랫동안 동양의학의 생활권 속에서 살아왔던 탓이겠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이른바 보약에 대하여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인삼이나 녹용을 비롯해 갖가지 진귀한 동식물이 영양을 증진시키고, 정력을 왕성케 하며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믿고있다.
실제 이러한 약제들이 얼마만큼 효과가 있는지에 관하여 필자는 연구한 것도, 경험한 바도 전혀 없어 판단을 내릴 입장은 못된다.
그런데 이러한 보약에 대한 관념을 현대의학에도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알고있는 의학에는 이렇게 막연히 몸에 좋다든가 몸을 보할 수 있다는 소위 보약이란 인정할 수가 없다.
투여하는 약은 어떠한 성분이 어느 기관에 어떻게 작용하여 어떤 약효를 나타내고, 무슨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예기하면서 사용하는 것이지, 막연히 몸에 이롭다든가 원기를 돋운다는 식의 보약은 있을 수가 없다.
며칠 전에 경험한 일이지만 어느 50대주부가 숨이 차고 뒷머리가 아프다고 찾아왔다. 평소 소화가 잘 안돼 음식을 제한했더니 체중이 좀 빠지고 기운이 떨어져 알부민주사를 맞았다는 것.
그랬더니 아주 기분이 좋아지고 원기가 나더라는 것이다.
그래 더 좋아질 욕심으로 3일 후에 다시 한 병을 더 맞았는데 이번에는 좀 빨리 맞은 탓인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쁜 증세가 나더라는 것이었다. 진찰을 해보았더니 수축기 혈압이 2백을 넘고 심장에도 상당한 부담을 받고있어 그런 증상이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소견이었다.
이 환자는 아마 자신도 모르게 고혈압증을 갖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기능성 위장장애가 생겨 소화가 잘 안되고 식욕이 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기운이 없고 쉬 피로해 지니까 비싸고 좋다는 알부민주사를 보약이라 생각하고 맞았는데, 그것으로 기운이 날리가 없지만 비싼 주사를 맞았다는 정신적인 위안으로 기분이 좋아졌으리라.
그러나 이러한 주사는 필요 없는 경우에 맞으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는 법. 그러잖아도 고혈압으로 심장에 부담이 가 있는 상태에 알부민이 들어가서 순환혈액 양이 갑자기 증가되면 증상이 더욱 심해질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알부민주사는 간이나 신장에 중한 병이 생기거나 장에 만성흡수장애가 있어 피 속의 알부민 치가 낮아진 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주사약이다. 때로는 알부민주사로써 숨져가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비싸고 귀하니까 좋은 약이라고 생각해 필요하지도 많은 경우, 분별 없이 주사를 맞는 것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비단 알부민뿐 아니라 고단위치료용 비타민제인 게부랄T라는 약을 외국에 갔다올 때면 으레 사 가지고 와야하는 보약으로, 이 약이 필요 있는 사람에서보다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서 훨씬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개인으로 볼 때는 물론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볼 때도 너무나 큰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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