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심과 눈치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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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세기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인「쿠르베」는『천사를 본 일이 없어 천사를 그릴 수 없다』고 하면서 사실주의 미술정신을 시사한바 있다. 이 평범한 진리는 수세기에 걸쳐 당연한 것으로 믿고 있었던 미술의 보편적 관념에 일대 전환을 가져오게 하여 예술가들에게는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었고 그것은 현대미술 정신의 원천으로서 한 몫을 한다.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게 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의 신장은 문화적 향상을 꾀하는데 가장 소중한 요소의 하나일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난다는 하나의 소박한 믿음, 감춰지거나 미화되지 않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자세는 우리네 사회질서의 가치관 정립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입바른 소리로 상사에게 바른말을 해봐야 별 이득이 없다는 계산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생활과 사고구조에까지 철저히 배어 있다.
직장은 직장대로 무사안일주주가 저류에 흐르고, 눈치 빠른 사람이 신념을 가까이하는 이보다 출세가 가깝다는 속물근성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가 아닌지 우려된다. 드디어 눈치문화가 꽃을 피우는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작년 초에 우리 집 꼬마가 동네 모 국민학교에 입학을 위한 추첨이 있었고, 낙방을 했고, 운이 없으면 떨어진다는 설명을 해야 했다. 이래서 철없는 어린아이는 주사위를 던져 그의 운명을 맡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중학과정도 매한가지여서 주어진 각본에 의해 학교가 선택된다. 거기에도 운수가 따라야지 본의나 실력이 선행되지는 않는다.
소위 대학입시의 눈치작전이란 것도 자못 안스러운 일이다. 카폰인가 뭔가가 동원되는 사태는 웃지 못할 시대적 풍속도임에 틀림없다. 실력이나 신념은 뒷전에 머무르고 요행과 눈치가 앞선다.
물론 대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행심이 작용할 여지는 주어지는 셈이다.
부동산이나 아파트 투기라는 것도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추첨(요행)의 실력을 발휘해야했고 복권을 사들고 일확천금을 꿈꿔야하는 사행심의 조장은 사회적 병폐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는 남에게 뒤진다는 통념이나, 신의가 캐캐묵은 유교적 잔재로나 취급받게되고, 입신을 위해서는 아부 잘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행태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상품의 과대선전이나 포장, 전시효과를 더 강조했던 지난날의 행정상의 오류도 따지고 보면 사실을 감추려는 속성의 반영이며 일확천금을 얻고자하는 사행심에 의한 눈속임 일수 있다. 매사에 떳떳한 자세와, 한계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것, 노력하는 만큼의 대가가 보장되는 사회풍토, 사행심이 발붙이지 못하는 사회질서의 회복은 간과해서는 안될 우리의 과제다.
얼마전 모 신문 기사에서 현대미술관 관장으로 미술인이 처음 된데 대해 무슨 획기적인 사건같이 다루어진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당연한 것이 이상한 것으로 말해지는 이 역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떤 중요한 직책이 주어질 때 자기의 분야나 적성이 맞지 않거나 능력이 다른데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사양할 줄 아는 고관님도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꿈같이 헤아려 본다.
천사를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천사 그리기를 거부한 프랑스의 화가「쿠르베」의 진실을 우리 사회에서 보고싶다.
김경인

<서양화가>▲41년 인천출생▲서울대 미대·동대학원 졸업▲현재 상명여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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