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횡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류·잭슨」은 취임하자마자 재무장관에게 합중국정부의 예금을 은행으로부터 인출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은행이란 『부자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재무장관이 말을 듣지 않자 장관을 세 사람이나 교체했을 만큼 그의 은행 협오증(?)은 심했다고 한다. 은행돈 12만5천원을 기한안에 내지 못해 1천5백만원짜리 집을 경매당한 한 중동취업 근로자의 가족 얘기가 보도된 19일 중앙일보 편집국에는 시민의 전화가 빗발쳤다.
『거 시원하다』, 『잘했다』 『그럴 수가 있느냐. 이번 기회에 은행의 횡포를 바로 잡도록 해야 한다.』…
우리사회 전반에 은연중 뿌리깊은 은행 협오증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오늘날 경제생활에서 은행의 역할과 기능은 막중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중추적 기늠」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 공헌을 과소 평가할 수는 없다. 「잭슨」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미합중국 정부의 돈은 여전히 은행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은행들은 그 경영과 일선 창구영업에서 잘못된 것이 많다는 불만과 지적이 그 동안 쌓여왔다. 물론 크게는 정부의 금융정책 차원에까지 올라가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서비스 정신의 결여」가 가장 큰불만의 요인이랄 수 있다. 은행, 더구나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중은행은 본질에서 분명 일종 「서비스업」이다. 그러나 서비스업이 요구하는 「친절」과 「봉사」의 자세가 우리 은행 창구에는 결여돼 있다.
돈을 맡기기는 쉬워도 빌어 쓰자면 문턱이 처마만큼이나 높다. 맡긴 게 돈을 찾아 쓰는데도 불편이 하나둘이 아니다. 고객이 아니라 자기네 업무처리의 편의를 위주로 영업을 한다는 인상이다. 돈맡기는 사람보다 돈쓸 사람이 더 많은 상황에서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다른 분야와 한가지로 우리 금융과 은행도 이제는 저울과 민주의 체질개선을 시도해야할 때다. 그러지 않고서는 더 이상 제구실하기 어려운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일선 실무자의 자세. 문제의 은행지점 담당자도 지점장도 대한 추위에 해외취업 근로자 일가족을 거리로 내쫓는 결과를 바랐을리는 없다.
다만 「규정에 따라」 제가 할 일만 했다. 결과가 그렇게 됐다. 한 은행의 작은 실수도 이처럼 한 가정을 파탄에 몰아 넣을 수 있다. 하물며 정부에 이르러서랴…. 최근 우리 상인들의 대부분이 자식들에게는 자기직업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응답을 했다는 의식조사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문병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