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코리안] 좌·우로 갈렸던 독일 한인 손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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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동베를린 사건 이후 좌와 우로 갈렸던 독일 내 한인동포들이 38년 만인 7일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했다. 250여 명의 참석자는 ‘아리랑’을 부르며 오해를 풀고 화합을 다졌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한국 정치상황을 두고 좌와 우로 갈렸던 독일의 한인동포들이 38년 만에 손을 맞잡았다. 그것도 남북한 정부 관계자들이 처음 참석한 자리에서다. 7일 오후 4시 베를린 분트슈트라세 40번지에 위치한 가톨릭 독일여성연맹회관 강당. 베를린 한인회와 6.15 유럽 공동위가 함께 주최한 '6.15 남북 공동선언 5주년 기념 유럽동포 축전'이 열렸다. 처음엔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그동안의 갈등과 불신의 골이 깊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거주 일부 동포를 간첩으로 몰았던 1967년 7월의 동베를린 사건 이후 동포사회 또한 분단의 역사를 걸어왔다.

그 때문에 동포 간 마음의 벽이 냉전과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장벽만큼이나 높다는 자조적 이야기도 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날 참석자 250여 명의 마음은 시간이 흐르며 봄눈 녹듯 풀리기 시작했다. 한 교포는 "그리움도 그만큼 컸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서로 마음을 열기 위해 동포들은 광원과 간호사로 독일 땅을 처음 밟았던 시절을 화제로 삼기도 했다. 개회식에서 손잡고 아리랑을 부를 때는 이미 한마음이 돼 있었다.

특히 이날 교포 행사엔 처음으로 남북 대사관의 고위 인사들이 나란히 자리를 함께해 따뜻한 박수를 받았다. 남측에서는 장시정 베를린 총영사와 유종호 공사 등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노태웅 참사와 이대성 경제비서관이 이례적으로 각각 부인을 동반해 눈길을 끌었다.

해프닝도 있었다. 강연에 이은 질의응답 시간에 갑자기 손을 번쩍 든 노 참사가 연단에 올라가 준비한 성명서를 읽다가 제지를 받은 것이다. 강연 내용이 외세 의존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돌출행위를 했다는 그는 바쁜 일정을 이유로 먼저 자리를 떴다.

그러나 대다수 참석자는 2부 순서로 펼쳐진 축하공연에 이어 '통일 비빔밥'을 함께 들며 불신의 장벽을 허물고 오랜만에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갔다. 베를린한인회의 이환도 회장은 "이날 행사는 그동안 나뉘었던 동포사회가 연합하고 포용한다는 점에서 뜻깊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6.15 공동위의 박소은 위원장은 "그동안 운동권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엄청난 왜곡과 편견이 있었다"며 "이제 물같이 서로를 씻어주자"고 말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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