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의 色다른 세상] '웨이 파인딩'의 위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최근 대형 할인매장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해외 브랜드, 토종 브랜드 등 매장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할인된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시간상으로 효율적이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항공모함보다 넓은 매장 안에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헤매게 마련이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구획이 분명치 않고 구분이 확연치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물어볼 기회조차 없는 고객은 한동안 매장을 돌고 또 돈다. 가까스로 본인이 원하는 제품 코너를 발견하지만, 공간 배치나 진열은 또 어떤가. 이는 자칫 고객 중심 가치를 내세우는 작금의 마케팅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도 있다. 매장의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런 때야말로 컬러의 위력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컬러의 힘을 제대로 활용한 매장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상품의 종류나 성질에 따라 넓은 매장을 색으로 확연하게 분류, 소비자의 발품을 줄여주고 피곤도를 줄이는 작업은 진작 했어야 할 일이다. 색으로 매장의 분류를 구분하는 안내시스템을 '웨이 파인딩(Way Finding)'이라고 한다. 배치공간을 색으로 구분해 목적지를 손쉽게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육코너는 빨강, 스낵류는 오렌지색, 야채는 녹색, 유아용품은 노랑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품의 이미지와 성격에 컬러의 이미지를 일치시키면 유목성을 높여줄 뿐 아니라 제품의 이미지도 업그레이드시킨다. 코너와 코너 기둥, 벽 전체를 대담하게 칠하고 진열대나 가격표시도 똑같은 공간 컬러로 마무리하고 반대색을 배합해 대비시킨다면 현저한 효과를 거둘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살다 온 주부의 얘기에 따르면 런던의 대형 매장에는 '웨이 파인딩' 시스템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이 시스템에 상품의 사진이나 문자, 아트를 배합해 보자. 색과 아트의 모양, 문자 등으로 소비자들의 편의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비주얼 면에서도 즐거움을 줄 것이며 구매의욕도 높아질 것이다.

컬러를 이용한 매장으로 성공한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여유있고 차분함을 특징으로 하는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개업해 99년 국내에서도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열었다. 오픈 전날 왜 하필이면 커피숍이 몰려있는 곳에 점포를 낼까 지적하는 TV 인터뷰도 있었다. 게다가 커피값도 다른 곳보다 비싸다. 그럼에도 개점 직후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뤘고,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물론 맛의 특별함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컬러의 비밀이 숨어 있다.

우선 트레이드마크는 다크 그린. 매장 내에도 이미지컬러와 같은 짙은 녹색을 기초로 다크색으로 정리했다. 조명까지 간접조명을 잘 사용해 벽을 비추었다. 컬러의 명도를 낮추고 간접조명을 적절히 사용하여 편안하고 여유있는 분위기로 타 커피숍과 확실한 차별을 두었다.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미스터 도넛'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미스터 도넛의 CI 컬러는 오렌지색과 노랑이다. 이 색은 실내에서도 기본 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다크 브라운이었다. 차분한 아메리칸 톤이었다. 도넛 매장이었지만 커피를 들고 신문을 편안하게 펼치는 남성들의 모습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 시기부터 인테리어도 옐로 계열로 통일하자 매장의 손님과 분위기도 확연히 바뀌었다. 신문을 든 남성은 줄고 학생이나 아이를 데리고 오는 어머니들이 줄을 이었다. 또한 옐로 계통의 인테리어는 사람들의 기분을 고양해 서두르게 했고, 당연히 회전율이 높아졌다. 매출이 쑥쑥 올라 소위 '대박'이 터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컬러리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