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캐릭터 "우리들 생명의 비밀은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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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세계 시장을 겨냥한 게임의 캐릭터는 일부러 국적과 인종을 구분하기 어렵게 제작한다. 엔씨소프트의 ‘길드워’(사진위)와 넥슨이 최근 개발한 ‘제라’의 게임 캐릭터(아래 네명)도 마찬가지.

3D 액션게임인 툼 레이더의 여주인공 '라라 크로프트'. 미국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됐을 때 배역을 맡은 앤젤리나 졸리가 그렇듯이 게임 속의 그녀도 잘록한 개미허리와 풍만한 가슴의 섹시함을 자랑해 왔다. 하지만 곧 출시될 예정인 '툼 레이더-레전드'시리즈부터는 평범한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물론 이 게임의 주 이용자인 젊은 남성들은 '글래머'가 좋다며 '평범녀'로의 변신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 개발사 측의 입장은 다르다. 여성과 어린이를 게이머로 끌어들이려면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 2년간 치밀하게 여론을 조사해 내린 결론이라고 강조한다. 다른 게임속의 캐릭터들 역시 라라 크로프트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용자의 취향에 맞춰 탄생하고 수없는 변신 과정을 거친다.

캐릭터는 게임의 흥행을 결정짓는 절대 요소다. 국내 온라인게임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리니지'에 등장하는 요정들은 게이머는 물론 어린이들에게까지 사랑받으며 게이머의 층을 넓혔다는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또 '카트라이더'에 등장하는 '다오'나 '베쯔'는 게임 속에 머물지 않고 문구나 완구는 물론 패스트푸드나 콜라에까지 진출해 개발업체에 수익을 올려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게임개발사들은 발표 초기에는 게임 캐릭터에 최대한 신비감을 덧씌우려 한다. 캐릭터의 이름을 라틴어나 독일어에서 빌려 오는 것도 신비전략 중 하나다. 캐릭터 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수법도 흔히 사용된다. 웹젠이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게임쇼 E3에 발표한 '썬'의 주인공은 아직 미완성이다.

게임 캐릭터는 국적이나 인종을 구별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게임 장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중성적인 이미지와 다양한 피부.머리 색깔을 갖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을 겨냥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국적이 다양한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특정 국가나 인종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는 게 상업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엔씨소프트의 '길드워'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길드워에서 죽은 자들과 교감하는 네크로멘서란 캐릭터는 몽환적이면서도 중성적인 이미지로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는데,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대한 구분은 게이머의 성에 따라 답이 갈릴 정도다.

눈에 확 띄지 않는 '작은 변화'도 게이머를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넥슨의 레이싱 게임인 '카트라이더'는 지난해 6월 발표된 이후 현재 10대는 물론 30대까지 이용자들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주요 캐릭터인'다오'와 '베쯔'가 지난 1년여 동안 수시로 변신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아는 게이머는 많지 않다. 넥슨의 윤대성 팀장은 "카트라이더는 특히 여대생들이 많이 즐기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반영해 여러 차례 옷을 바꿔 입히고 눈동자나 입모양 등에 '성형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개발업체들은 캐릭터 띄우기 작업에도 공을 들인다. PC의 배경화면이나 스크린세이버로 사용할 수 있는 화면을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캐릭터를 새롭게 각색해 그린 그림을 홈페이지에 올리도록 하고 우수작품을 뽑는 대회를 열기도 한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캐릭터 진화에 활용할 아이디어를 얻는 창구도 된다.

덕분에 게임 개발에 들어가는 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영화판의 블록버스터 제작 과정과 다르지 않다. 넥슨이 최근 발표한 온라인다중접속게임(MMOG) '제라'는 3년간 100억원을 쏟아부으며 100명이 매달린 끝에 개발됐다. 웹젠의 '썬'이나 엔씨소프트의 '길드워'에도 각각 100억원 이상이 투자됐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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