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 자장, 자…」(2)|한태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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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내-(귀찮은 듯)내두 잠와.
어매-오오- 잠오믄 자야재.
사내-색시 눈뜬다! 어매.
어매-자다깨다 자다깨다 도깨비 아니가. (심통나서) 니나 자그라 그만.
사내-떴네! 깼나? 자는가? (여자의 숨찬 소리만)
여자-(멍하니 있기만)
어매-무습다. 도깨비 같네.
사내-또 깼나?
어매-고만 고만.
사내-내 색시 옆에서 자야제. 눈이 가물가물타 안 보이네.
어매-아가, 눈 아프나? 와 그래?
사내-아니 아니.
어매-둥기 둥기.
사내-(존다.)
어매-(등에 업고) 아- 아 새는 새는 낭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 자고 어여! 자-.
사내-어매, 내 가볍지?
어매-하믄! 솜털이다. 물에 붙은 땅갑지야. 낭게불은 송 방울아.
사내-내는 내는 어데 잘꼬 우리 어매 품에 자지.
어매-오륙년이 되어 가믄 속절엄시 썩어지네
어매-(돌아본다.)
사내-(뒤척인다.)
어매-새는 새는 낭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 자고
여자-잠 들라 그래요.
어매-잘두 잔다, 잘두 잔다.
사내-색시야- 숨-더 내 뿜으라-
어매-돌에 붙은 땅갑지야.
사내-내 한숨 자고 일어난다. 색시두 눈부 쳐라. 내는….색시- (한숨)
어매-잘 자내, 나비.
색시-벌써! (탄식. 땅이 꺼지듯이 무겁다)
어매-(본다. 들썩인다.)
색시-(!)
어매-잠들면 떠메고 가도 모른다. 굿을 해도 잘 자고, 옆에서 죽어 가도 모른다. 니도 알 지.
색시-어머니
어매-뭔데?
색시-아니에요.
어매-눈 크네. 눈깔 뚱그렇게 뜨고 와?
색시-(다가온다.)
어매-(물러선다.)
색시-(또 다가온다.)
어매-이 도까비가?
색시-얼굴 좀 보려 구요.
어매-보믄 뭐하개?
여자-무서워서요! 괜히 무서워져요.
어매-…
여자-저이 옆에 있으께요. 그래 두 되지요.
어매-이봐라.
여자-(서슬에 겁이 나) 예?
어매-가라.
여자-네에?
어매-가그라.
여자-저요?
어매-니는 가라 했다.
여자-아니!
어매-내 있으믄 그만이다. 가 봐라.
여자-전…(너무 당황해서) 전….
어매-아 깰라- 어서!
여자-어머니.
어매-(아들, 등에서 내려놓으며) 못 알아 듣나? 썩 가 버리라 했잖나.
여자-어머니이-.
어매-(아들, 무릎에 누이며) 이 자슥, 나비, 눈에 넣어 두 아프지 않은 자슥.
여자-전요-.
어매-잘두 잔다, 잘두 잔다. (토닥거린다)
여자-전 제가 어딜 가요? 어딜!
어매-나비야 곤하제? 아이구 웃네! 온냐 좋제?
여자-우린-.
어매-내두 좋다. 내는 만사가 다아 좋은 기라-.
여자-우린 같이 있었어요. 저도 저이를 업어 재운 적이 있어요.
어매-손봐라! 손이 많이 컸네.
여자-어머니!
어매-(들은 척도 않고) 귀도 잘 생겼다! 코는- 오호 복코, 하 복크다!
여자-저이는 제 남편이에요. 처음이구 마지막인 남편이에요.
어매-나비야 (일부러 더 크게) 나비야! 일어나그라.
사내-(그대로, 기척도 없이)
어매-색시 간단다. 일어나그라.
사내-(어매 흔드는 대로)
어매-봐라, 그냥 가라지 않나. 귀챦아서 일어나기도 싫단다.
여자-혹!
어매-(여자에게) 니는 멀쩡하구, 새파랗구, 여시끼두 있는데 어데가믄, 몬살겠나. 사내도 잡을 수 있을 끼라. 사내는 쌔구쌨다. 길바닥에도 널려있다. 천지사방에 다 사내 아니 가?
여자-(고개 절레절레) 제 부모가 누군진 모르지만, 부모를 두고 맹세했어요. 살아선 저이 곁을 떠나지 않고, 저이를 잘 돌봐 주겠다 구요. 나비도 알구 있어요. 우린 여기(팔뚝)다 뜸을 떴죠. 보세요, 동그라미가 있찮아요. 여덟점이에요. 아, 나비것두 있어요. 거길 보세 요. 그쪽, 그쪽 팔위에… 한번 보세요.
어매-야야, 니는 딴 사내와 또 만들면 되는 기라 동그라미 두개나하구 오래오래 살면 되 잖나. 니- 이자슥은 없는 거로 치면 되는 기야. 자, 일어서라. 내-I나비 원망 안 듣게 해 주꾸마.
여자-어머니, 제발 이러지 마세요.
어매-(씩 웃는다.)
여자-일이 생기면 제가 벌 수 있어요. 우리 셋이 먹을 수 있어요.
어매-(찢어지게 웃는다.)
여자-(!)
어매-우리 나비가 그리 씨원했나? 사내답게 해주더나? 니를 니한테 살아주마 했나? (또 웃으며) 아니다. 니한테 홀렸댔다. 잠시 돌아슨 사내, 또 홀치려 드는 게 아니야. 잠시 그랬든 건 잊어야재 어에?
여자-오년이에요. 오년을 같이 살았는데 잠시라니요. 어머니 우린 남이 아니에요.
어매-그라믄?
여자-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있어요. 우린 남매를 낳기로 했죠. 어머니도 좋와 하실 거라 구. 집에 가면 애를 갖자 구 했어요.
어매-헛! 지랄!
여자-물어 보세요! 그런 말까지 했어요.
어매-악을 써 봐라, 나비가 눈을 뜨나.
여자-(눈물 방울방울)
어매-들어온 자슥은 안 내준다. 어매 품에 자는 자슥 불쌍치 않나?
여자-(지그시 있다가) 혹시, 제가 저이를 버리고 가버릴까봐 그러시나요. 저이가 역장 무 너질까봐 미리 저를 보내려구요? 아니, 아니, 그러지 않아요. 전, 우리가 어떻게 정을 붙 인건데, 전 그러지 못해요. 어머니 저를 뭉게지 않은 건 나비뿐이예요. 돼지한테 갇혔을 때두 늑대에게 물려 잤을 때두, 나비는 꼭꼭 그 자리에 나타났었어요. 컴컴한 우리에 쑥 머리를 내밀 때마다 돼지두, 늑대두 자지러졌어요. 나비는 작은 몸으로 딱 버티구 서서 움직이지 않았죠. 차마 나를 어쩌지는 못하게-. 망가진 버스간에도, 천막 뒤로도, 짐더 미 사이로도, 나비가 날아 들었다구요. 우린 많이 맞고 많이 울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우리도- 우리 둘이「우리」로 들어간 거에요. 나비는 울지 않았어요, 사내다웠죠. 의젓하게-. 나비와 나는 또 시달리게 되구, 더 고달퍼졌죠. 그것들은 수근수근 하다가 퉤퉤 침을 뱉았고, 나중에는 우리 둘을 밀어내 버렸죠. 쫓겨난 거에요. 아하- 그런데 어 떻게 나비를 두고가요. 남편 두고는 못 가겠어요.- 또, 또. 나비머리가 터진 적도 있었 어요. 난 몸을 가릴 틈도 없이, 피가 솟구치는 구멍을 막고 있었어요. 늑대가 버리구간 긴장화엔 나비피가 잔뜩 묻었었어요. 저는 그걸 팽개치며 어머니를 불렀어요. 우는 거 같았죠. 전 그제서야 아- 저사람도 사람이구나. 난장이가 나를 위해서 들어오는구나 했 어요. 나비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이 우리, 저 우리로 끌려다닐거라구, 아아, 나비을 쫓아 다녀야지- 한거에요. 어머니, 이제 저이가 깨어나면 이발을 전부 믿을 수 있쟎아요. 그 렇지요. (끅끅 운다.)
어매-이봐라. 니 하고는 안 된다. 니는 멀쩡타!
여자-(나비한테 엎어지며 더 운다.)
어매-서방 주고 바꾼 자슥이다. 내는 이 자슥과 들앉아 있구 싶다 어여! (여자를 낚아채 듯 일으켜 세운다.)
여자-무슨 짓을 하는 거에요!
어매-(벽에 붙은 쇠꼬챙이 떼어 낸다.) 니도 나귀타고 장에 갈래?
여자-(자빠지듯 피하며) 나비! 나비야 나비야!
어매-가라했제?
여자-(사내보구) 여보, 정신차려요. 좀 일어나봐아!
어매-니때문에 우리자슥 머리터졌다고, 니 때문에 내자슥 죽도록 맞았다고-
여자-(비명) 아아! 이 사람은! (비명)
어매-다신 안 보는기다. 니는 나귀타고 장에 간기다. 장으로 도망간기다. 장에 간기야.
여자-(나간다) 나비를 좀 봐요. 제발!
어매-(아들 본다)
여자-(유령같다.) 음-갔네요, 혼자-.
어매-독하네! 사날 굶은게-.
여자-나비, 나비야-. 같이 갈께요. (무대에서 사라질 때까지 반복한다.)
어매-(지켜본다. 안 보일때까지) 야야 이 자슥, 내 자슥, 곤하게두 자네. 그만 일라라. 어 여! 푹 잤네! 우리 둘이다. 둘만 남지 않았나. 아부지는 장에 가구, 여시두 장에 가구, 나귀타고 장에 가시구-. 자 자 푹 잤네.
아들-(죽은 듯이 고요하다.)
어매-(취한 듯 뒷짐지고 업은 것을 하며 방을 돈다) 아가, 그만 자라. 일나야제. 밥묵자. 밥주꾸만 어매가-. 어서, 어매 심심타, 어서, 나비야. (신이나서) 새는 새는 낭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자고-.
사내-(그대로)
어매-온냐. 내 기다리꾸만. 여태꼇 기다렸는데 몬기다리겠나, 오호-. 더 자라. 온냐- 온냐 -.
(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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