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과 달리 우리 가락엔 희로애락 공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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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 아리랑 경연대회가 열렸다. 10개 지역 참가 팀 중에서 대상을 차지한 경기도 부천 팀이 ‘배못탱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사진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산모퉁이 느티나무 우리 마을 구했다네. 아리랑 아리랑 배못탱이 구경가세”

 세종대왕 동상이 내려다보는 서울 광화문 광장. 지난 12일 오후 이 광장에 세워진 ‘전국 아리랑 경연대회’ 무대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아마추어 소리꾼들이 ‘아리랑’을 뽐냈다. 네 살배기부터 70세 노인까지 취미로 우리 민요를 배워온 참가자들이다. 이들은 각각 고향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리랑을 불렀다. 전남 진도에서는 세월호 사건의 슬픔을, 경기도 평택에서는 미군기지 이전으로 동네 이름이 사라지는 아쉬움을 아리랑 가락으로 표현했다.

 지역 예선을 거친 10개 팀 중에서 대상은 경기도 부천의 옛이야기 ‘배못탱이’를 주제로 아리랑을 만들고 부른 단체가 차지했다. 1930~4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홍수가 나 마을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뗏목을 만들어 느티나무가 있는 모퉁이(못탱이)에 배를 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곡한 창작 아리랑이다.

 배못탱이 아리랑을 만든 김진찬(41·사진)씨는 중요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다. 육군본부 군악대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던 김씨는 국악을 연주하던 다른 대원들을 보면서 우리 가락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서양음악 중에서 기쁜 곡은 기쁜 감정 한 가지만 표현할 수 있지만 우리 음악 속에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고 강조했다.

 3대 아리랑의 고장인 강원도 정선, 전남 진도, 경남 밀양이 아닌 경기도 팀이 전국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심사를 맡은 이화여대 홍종진 한국음악과 교수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역색을 살리고, 단순하면서도 여러 사람이 부를 수 있게 민요의 가치를 살린 팀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말했다. 김씨는 “토착 아리랑이 없는 경기 부천에서 주민들의 애환을 아리랑에 담기 위해 지역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샅샅이 뒤졌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번 수상으로 주목받기 전까지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그는 “경남 거창에서 음악 좀 한다고 해 관련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레슨비가 없어서 포기해야 했다”며 “군대에서 악기를 다시 잡기 전까지 공장이나 식당에서 안 해본 허드렛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 전문 소리꾼도 “우리 가락을 업(業)으로 삼으려면 ‘손가락 빨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오랫동안 들어야 했다” 고 말했다.

 올해로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대회는 2011년 중국이 조선족이 부르는 아리랑을 세계 유네스코의 무형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도한 게 계기가 됐다. 이번 대회 심사를 맡은 김진성 락음국악단 예술감독은 “대회 예선에 전국 40여 개 팀이 지원했다”며 “내년 대회에 100여 개 팀이 지원할 예정이라 각 지역의 애환이 담긴 아리랑이 더욱 다양하게 나올 것”라고 내다봤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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