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두통, 설마하다 병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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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아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보호자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당연히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며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 한다. "어린 아이가 무슨 두통…"이라며 그냥 넘기다가는 병을 키울 위험이 있다.

경희대 소아과 정사준 교수는 "어린이 두통은 흔한 증상이다. 반복성 두통만 하더라도 7세에서 10% 정도, 12세 경우에는 20%, 15세 경우에는 30%가 겪는다"고 말한다. 어린이 두통의 원인과 대책을 알아본다.

◇어린이 두통도 원인이 다양하다=어린이 두통은 어른에 비해 뇌막염.뇌의 기형.뇌종양.수두증(뇌실에 물이 찬 병) 등 뇌의 기질적 이상이 많다. 두통의 원인을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어떻게 아픈가 하는 점이다.

즉 두통이 오전.오후 중 언제 더 심하게 나타나는지, 두통으로 인해 자다가 깨는 일은 없는지, 열.구토.시력이나 시야 이상 등 달리 불편한 증상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 기침이나 재채기 등 뇌의 압력이 올라가는 순간 두통이 더 심해지지 않는지도 관찰해 알아내야 한다.

정교수는 "어릴수록 자신의 몸 상태를 표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축농증 같은 콧병이나 사시.눈의 조절장애 같은 안과질환 등 다른 병 때문에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한다.

두통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특히 항상 일정한 부위가 반복적으로 심하게 아플 경우엔 뇌기형 등 기질적 이상이 우려된다. 반드시 소아신경과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기질적 이상 없이 반복해 나타나는 어린이 두통으로는 스트레스나 긴장으로 인한 긴장성 두통과 일종의 혈관성 두통인 편두통이 대표적이다.

◇아이의 호소, 끝까지 들어봐야=치료는 원인에 따라,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편두통은 초등학생 4%, 사춘기땐 5.3%가 경험하는데 치료방식은 다양하다.

예컨대 사전증상이 있는 환자는 그 즉시 아스피린.아세트아미노펜.이부프로펜 등을 복용함으로써 통증을 예방할 수 있다. 편두통 빈도가 잦을 땐 베타차단제.칼슘길항제.항경련제 등으로 좋은 효과를 보기도 한다.

뇌에 기질적 원인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양인지, 뇌실에 물이 찬 수두증인지 혹은 뇌염이나 뇌막염 등의 염증 때문인지 등에 따라 치료가 다르다.

뇌막염은 뇌압을 떨어뜨려주면서 치료하면 두통이 낫는다. 뇌종양으로 인한 두통은 종양을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

긴장성 두통은 아이가 편안한 상태에서 상담을 하면서 아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저녁 때 책상에 앉기만 하면 머리가 아프다며 엄마와 함께 병원을 찾은 H군(9)의 예를 보자.

그의 일상은 또래 친구들처럼 학교.학원을 반복하는 일의 연속이다.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시키지 않는데도 힘들다고 꾀병을 부린다"고 의사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정신과 홍성도 교수는 "기질적 이상 없이 두통을 호소할 땐 아이에게 두통을 야기할 만한 힘든 일이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다. 이때 힘든 일이란 객관적 상황이 아니라 아이의 주관적 느낌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즉 H군은 친구보다 학원을 덜 다니지만 본인에겐 벅차다. 따라서 학원에서 돌아와 숙제를 위해 또다시 책상에 앉으려 할 땐 정말로 두통이 오는 것이다. 꾀병이 아니라는 것.

홍교수는 "두통을 호소하는 아이에겐 우선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끝까지 다 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원인 중 두통을 일으키는 요소를 찾아내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친구 관계가 나쁠 때, 학교 생활에서 남보다 뒤처질 때, 가족 내 누군가를 싫어할 때, 학업 문제 등이 어린이 긴장성 두통을 일으키는 흔한 원인이다.

황세희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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