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이 정도만 알면…'교양 좀 있는 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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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세계명작편
가메야마 이쿠오 외 지음, 임희선 옮김
이다미디어, 864쪽, 2만7000원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1~10
존 라이트 외 엮음, 김주영 외 옮김
이지북, 각 200쪽 안팎, 각 권 9700원

국어사전에 따르면 교양은 '사회 생활이나 학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행과 문화에 대한 지식'이다. 여기에서 교양이 학식과 생활, 지식과 품행, 즉 지(知)와 행(行)을 아우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만 권의 책을 읽어 그 내용을 줄줄이 꿰고 있다한들 품행에 문제가 있다면 교양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품행이 방정하다 해도 문화에 대한 지식에 어둡다면 역시 교양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교양을 쌓는데 도움이 된다는 책들의 효용은 교양의 필수 요소로서의 문화에 대한 지식을 쌓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세계명작편'은 고전 명작과 현대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문학 작품 226편을 연대순으로 해설한다.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 문학 작품이 주를 이루며 마지막 장 '세계 각국의 문학'에서는 그 밖의 여러 언어권 작품들을 다룬다.

사뭇 짜임새 있는 구성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경우, 세 줄 정도의 간략한 소개글, 셰익스피어의 일생을 정리한 글, 줄거리와 감상 포인트 및 작품 해석을 담은 글, 작품 속 명문장, 주석, 그리고 우리말 번역본 서지 사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우리말 번역본 서지 사항은 좋은 번역본을 선별 추천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지만, 옮긴이 혹은 편집자가 들인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이 번역서의 일본어 원서 제목은 '세계문학의 명작과 주인공 총해설'이다. 이에 따라 작품 속 주인공에 관한 해설이 장점이다. 예컨대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미국 대지에 뿌리내린 강한 여성의 원형'이며,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장 발장은 '사회의 악에 대항하는 양심의 싹과 그 성장이며 민중의 대표'이고,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레뮤얼 걸리버는 '인간의 기만과 영국 정치나 학계의 부패에 대한 분노에 불타는 작가의 분신'이다.

물론 깊이 있는 비평적 해설이나 분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세계 명작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서양 명작들이다. 각 꼭지 분량이 짧기에 주마간산에 그친다. 이런 한계들을 감안하면서 (서양) 명작 소사전으로 활용하거나, 명작이라는 바다에 뛰어들기 전에 거치는 준비 운동으로 삼거나, 오래 전에 읽은 아련한 기억 속의 명작을 호출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듯 하다.

한편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은 예술, 경제, 과학, 철학과 종교, 역사와 인물, 미디어와 지리, 스포츠, 어워드(노벨상, 아카데미상, 그래미상 등) 등의 주제를 10권으로 다룬다. 영어 원서 제목은 '필수 지식 안내' 정도가 되는 데, 도서평론가 존 레너드가 쓴 머리말이 책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독자 제위께서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정확하고 풍부한 사실 내용을 얻으며, 일상 생활과 업무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제7권 역사와 인물의 '세계사'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이 간혹 눈에 띈다. 이를테면 조선이 '귀족을 중심으로 지배층을 형성했다'거나, '고려의 마지막 왕이 이성계를 중국으로 보내 명 왕조를 치게 했다'거나, '조선의 3대 왕 세종' 운운하는 부분이다. 조선의 지배층은 귀족이 아닌 사대부였고, 요동 정벌을 명한 우왕 다음에도 창왕과 공양왕(마지막 왕)이 왕위를 이었으며, 세종은 조선의 4대 임금이다.

물론 새뮤얼 존슨의 말대로 '사전은 시계와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못한 것이라도 없는 것보다 나으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완벽하게 옳을 수는 없다'고 한다면, 사실상 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의 상대적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면 될 것이다. 그 상대적 장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미국에 관한 항목들이다. 예컨대 제8권 미디어와 지리에서 미디어 부분에는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잡지에 걸쳐 미국 미디어의 역사와 현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제9권 스포츠도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위주라는 한계 안에서 스포츠 소사전으로 손색이 없다.

이렇게 볼 때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과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세계명작편'이 '교양'이라는 말값을 다 하는 책들인지 의심할 수도 있지만, 교양의 단서 혹은 단편적인 재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면 값을 속였다고 하기는 힘들다. 교양이라는 집을 지어나가려면 무척이나 다양한 자재들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이런 성격의 책들은 여러 자재들의 특성, 쓰임새, 중요성 등을 안내하는 구실을 한다. 설계도를 그리고 실물 자재들을 손으로 직접 다루어 집을 짓는 행위는 온전히 우리들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게 어디 로마뿐이겠는가. 왕도(王道)가 없는 게 어디 수학뿐이겠는가. 교양이야말로 그러할 것이다. 교양을 쌓아나가는 길을 스스로 닦는 첫 하루아침에 만만한 반려로 삼기 좋은 책들이라고 해두자. 다행히 이런 속담들도 있지 않은가.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 반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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