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인적쇄신 요구 수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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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집권 2년4개월을 맞은 현 정권의 국무총리가 "지금은 측근이나 사조직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권력 중반기를 넘어가면 정권이 끝나기 전에 한 건 해야겠다는 세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래서 총리가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철저한 관리를 당부했다고 했다. 어제 열린 한 조찬강연회에서의 이해찬 총리 발언이다.

바로 전날에는 열린우리당 의원과 당의장의 비공개 간담회가 있었다. 의원들은 문희상 의장을 향해 위기의 원인은 청와대며 따라서 대규모 인적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야당도 아니고 국무총리와 집권당 의원들이 이처럼 대통령 측근과 청와대를 향해 근신과 쇄신을 공개적으로 촉구할 정도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현 집권세력의 위기요 나아가 국정의 총체적 난맥상이다. 따라서 청와대는 더 이상 그런 소리를 외면하려 해서도 안 되고 외면할 수도 없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럼에도 겸허한 자성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잘 하고 있으니 청와대를 흔들어대지 말라'는 식의 항변이 청와대로부터 나오고 있다. 현실진단조차 못하는 현 상황이 더 심각하다.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니 말이다.

엊그제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원 조회에서 청와대를 향한 비판에 억울함을 호소한 데 이어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기고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청와대 내 국정 운영 시스템의 개선 요구를 '광풍(狂風)'에 가깝다며 조선시대 훈구파에 빗대어 비난하기도 했다.

뭔가 잘 해보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그들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두 사람의 발언은 문제를 푸는 올바른 자세가 결코 아니다. 오죽했으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그런 얘기를 했을까를 짐작하게 한다. 마침 곧 국정원장과 청와대 내 외교안보 라인에 인적 변화가 있을 예정이란다. 그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차제에 면모를 일신하는 인적쇄신 조치가 있어야 한다. 남은 2년8개월이라도 제대로 된 국정시스템 속에서 국가적 난제들을 해결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