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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신고 쏟아지는데 … 인력 없어 못 갈 땐 무력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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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력이 더 늘지 않으면 그만둘 겁니다. 도저히 힘들어서 감당할 수 없어요.”

 지난달 3일 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양승조·부좌현 의원이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방문했을 때 상담원들이 하소연을 쏟아냈다. 이들은 시간외 수당 없이 일하지만 인력이 충원되지 않아 상당수가 사표 낼 생각을 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아동학대 예방의 두 중심축은 보호기관과 상담원인데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 올 들어 아동학대 신고가 36% 늘면서 업무 강도가 올라가자 상담원의 퇴직이 크게 늘었다. 굿네이버스는 정부으로부터 지역아동보호 전문기관 26개를 위탁받아 운영 중인데, 올 1~9월 62명의 상담원이 그만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 40명(25개)보다 크게 늘었다.

 경기도 한 지역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 김모(29)씨는 2년간 100명 넘게 피해 아동을 만났다. 김씨는 “아침에 출근해 밤 9시까지 전화받고 출동하고, 가해자 부모한테서 폭언과 협박을 수없이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밀려드는 신고를 다 소화하지 못하면서 혹시 심각한 상황에 빠진 아이를 놓치는 게 아닐까 자괴감과 무력감에 괴로워서 상담원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김씨는 힘든 줄 알고 상담원을 시작했지만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지금 전공과 상관없는 직장을 알아보는 중이다.

 경기도 고양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한 상담원은 “칠곡이나 울산처럼 사망 사고가 나면 지역아동보호센터의 무능을 꾸짖는다”면서 “지나치게 넓은 지역을 관장하면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그런 사건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 김정미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아동보호 전문기관당 상담원 9명까지 정부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인력이 달리는 데는 우리가 직원을 파견하기도 한다”면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 14명이 고양시 고양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찾았다. 김제식(새누리당) 의원이 본지 기사(10월 11일자 1, 8면 ‘무상복지에 밀려난 아이들 3만 명’)를 들어 보이며 “경찰과 함께 출동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현장에 함께한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이 “지금 인원이라면 신고가 들어와도 경찰과 함께 출동할 시스템이 안 된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장 관장은 “상담원 평균 재직기간이 2년3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아동을 학대한 가해자를 만나려면 최소 3~5년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1~2년차 상담원이 담당하니 위험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문기덕 고양 아동보호 전문기관 관장은 현장을 동행 취재한 본지 기자에게 “사람(상담원)이 많으면 (학대아동 집에) 한 번 방문할 것을 두 번, 세 번 찾아간다. 보통 2명으로 한 팀을 이뤄 모두 3팀을 운영하는데, 하루에 신고가 4건 들어오면 어찌할 줄을 모르게 된다”고 호소했다.

 상담원들은 신고 접수부터 현장조사, 격리보호, 고소·고발, 타 기관 보호 의뢰, 부모와 신고의무자를 위한 교육, 각종 잡무 처리 등을 모두 담당한다. 고양 아동보호 전문기관 측은 “24시간이 부족하다”며 “상담원은 수퍼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윤인순 의원에 따르면 국내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상담원 1명당 연간 90.9명의 학대 아동 보호 임무를 수행한다. 내년에는 이 규모가 11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미국은 15~20명이어서 더 양질의 서비스가 가능한 구조다. 이목희(새정치연합) 의원은 이날 고양 아동보호기관을 찾은 자리에서 “노르웨이 아동센터에 갔을 때 센터 인력 23명이 6명의 아동을 맡고 있었는데 우리나라라면 과잉이라고 지적했을 것”이라 고 말했다.

 전국의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51곳이다. 2005년 아동학대 예방 사업이 중앙정부에서 지자체 업무로 넘어가면서 10년간 겨우 13 곳이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100개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예산 당국은 이번에 겨우 56개로 늘리기로 했다. 상담원도 보호기관 한 곳당 현재의 평균 9명에서 15명으로 늘리자고 보건복지부가 요청했으나 이번에 반영되지 않았다. 과도한 무상복지에 예산이 빨려들어가면서 학대아동 보호를 위한 복지예산이 묻혀버린 것이다.

  고양=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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