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포럼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 2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1877년 4월 일본 삿포로농학교를 떠나는 미국인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교장이 학생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매사추세츠 농과대학장을 지낸 클라크는 홋카이도 개척에 나선 메이지 유신정부의 간곡한 부탁으로 8개월 전 이 학교 교장 겸 농장장으로 영입됐다.

짧은 재직이었지만 그의 이 한마디는 그후 일본 청년들에게 매우 큰 감동을 주었다.

삿포로농학교는 제국대학을 거쳐 지금 명문 홋카이도대로 바뀌었지만 클라크 교장의 뜻을 받들어 프런티어 정신, 국제성 함양, 전인교육, 실학 중시의 4대 기본이념을 지키고 있다.

이 대학 출신의 세계적인 수의학자 가나가와 히로시(현재 명예교수) 박사의 연구실에 어느날 30대 초반의 한 한국인 학자가 찾아왔다. 그는 1984년부터 2년간 이곳에서 뼈를 깎는 현장실습을 하면서 동물의 인공임신 등 새로운 학문 분야에 눈을 떴다. 바로 그가 한국의 국민 과학자가 된 '황우석' 이다. 130년 전 클라크가 외쳤던 그 야망을 마침내 한국인 황우석이 일궈냈다.

황우석의 연구는 제1막이 끝나고 제2막으로 들어가는 참이다. 줄기세포 연구 결과는 결국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세계의 공공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선진국의 기술패권주의, 연구자들 간의 견제와 질시, 의료산업계의 이해관계, 민간단체의 반대운동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럴수록 황우석의 연구가 과학기술 외교에서 큰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가 총 연구개발비는 약 160억 달러로 세계 전체의 2%에 불과하다. 미국은 40%에 달한다. 미국이나 일본과 손잡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줄 게 있으면 얻는 게 쉬워진다. 이 점에서 황우석 연구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이다. 제2막은 한층 치밀한 성공전략이 필요하다.

연구가 성공하려면 4개 요소가 있어야 한다. 연구자의 집착, 운, 좋은 동료, 돈이다. 페니실린의 역사가 훌륭한 사례다.

영국의 세인트 메리 병원에 근무하던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2년 코 분비물에서 항균작용이 있는 효소를 발견했다. 연구를 거듭하던 중 28년 우연히 실험실의 열린 창문을 통해 날아온 푸른곰팡이가 배양물질에 들어가 항균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6년간의 집념과 갑자기 찾아온 운이 페니실린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는 10여년 동안 제자리를 맴돌았다. 실험의 안정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40년대 초 생화학자인 어니스트 체인과 병리학자인 하워드 플로리가 연구에 합류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도 상업화의 길은 멀어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망가진 영국에는 더 이상 기댈 게 없었다. 이들은 뉴욕의 록펠러 재단에 손을 내밀어 자금을 얻어냈다. 그러자 머크.스퀴브.화이자 같은 유력 제약업체들이 잇따라 투자하기 시작했다. 페니실린은 전쟁 속에 구원의 화신으로 자리잡았다. 플레밍 등 3명은 45년 노벨상을 받았다.

황우석은 집착이 있고 운이 좋다. 그리고 1년 전만 해도 그에게 등을 돌렸던 외국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황우석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 생태계'를 만들어 줘야 한다. 바이오. 정보.나노 기술, 의료장비.임상의료 등의 연구개발 프로그램과 맞물리게 하고, 과학기술 정보의 유통시스템과 데이터 베이스도 선진화해야 한다. 올해를 과학기술 외교의 원년으로 삼아 황우석 연구를 앞장세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곽재원 경제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