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에만 잔뜩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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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해숙<주부·서울강남구논현동125의3>
한해의 끝 12월-.
결혼 전 연말을 맞이하는 내 기분이 정녕 이랬을까. 공연스레 크리스머스다, 망년회다, 신년회다, 설날이다 해서 마음은 분주히 마치 지구 끝까지라도 달릴듯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두렵다. 30일동안 노력한 땀으로 흠뻑젖은 월급 봉투. 방위세·주민세등 세금을 제하고는 단 10원도 축내지 않고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준다.
이달치 봉급을 받으면 담그려던 김장과 메주는 끝내 쑤지 못했다.
빚내 가며 먹을것 챙겨두기는 차마 못하는 성미. 모아둔 돈 없고 김장 보너스 없고보니 김치ㆍ된장은 먹지 말아야 하고, 간장은 어쩔수 없이 소금으로 대체해 겨우살이준비를 마칠수밖에없다.
샐러리맨-.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잘 손질된 양복은 입었지만 실상은 텅 빈 가난함. 봉급받아 전기세며 각종 세금 제하고 내집 마련이란 목표를 내걸고 부금과 적금을 조금씩 넣고나면 봉급받은 10일째쯤 되는 날부터는 거의 반찬은 콩나물 2백원어치로 하루를 때우는게 고작이다.
돌지난 아기의 간식은 물론, 공중전화 걸 돈 20원도없이 바둥대며 다음 봉급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빚지는게 두려워 그렇게 지내지만 예산에도 없는 손님이 다녀가면 빚은 쌓인다. 돈 때문에 외출도 삼가고 초대받지않고, 초대하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몸부림은 잘 쳤지만 지독한 여자로 친지들은 손가락질 하진 않을까.
며칠 지나면 상여금이 나온다. 빚도 갚고 밀린 곗돈도 붓고, 또 구부러진 허리로 아직까지 그 힘겨운 농사일을 면치 못하시는 시어머니께, 그리고 농사일 하시다 결국 몸져 누우신 시아버님을 찾아뵙고 약값이라도 보태 드려야할텐데….
그래서 쌀 한톨 한톨 농사지어 대학 문을 나서게 하신 노부모님께 보람을 안겨드려야할텐데. 열손가락으론 모자랄 만큼 쓸곳은 자꾸 드러나지만 막상 상여금은 얼마나 나올지?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깊어가는겨울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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