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안까먹는 펀드 ? 믿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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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올해 초 6000만원을 해외 펀드에 투자한 주부 유모씨는 최근 360만원의 손해를 보고 펀드를 해지했다.

은행 예금만 해 오던 유씨는 처음으로 증권사를 찾아가 "수익이 적어도 좋으니 원금을 까먹지 않는 상품을 골라 달라"며 직원과 상담했다. 그러나 증권사 직원은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걱정 없다"며 펀드 가입을 권했다. 유씨는 이를 원금 보장이 된다는 말로 여기고 투자했다 낭패를 본 것이다.

펀드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막무가내식 펀드 판매에 따른 투자자의 불만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은행이나 증권사 직원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데 따른 피해를 구제받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전문가들은 5년여 만에 부흥기를 맞은 펀드 시장이 안착하려면 투자자 스스로 조심하는 것 못지않게 감독 당국과 금융사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본지 5월 30일자 e1, e5면>

◆ 예방이 최선=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펀드 관련 민원 중 조정이 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엉뚱한 펀드 투자 권유로 피해 봤을 때 상담 내용을 녹음한 것이 있으면 배상을 받는데 도움이 된다.

금감원 김형권 증권분쟁조정팀장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언급된 약관에 일단 서명하면 법적인 다툼에서 투자자가 절대 불리하다"며 "약관이나 투자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충분히 문의한 뒤 펀드에 가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은 31일 자산운용사가 온라인으로 펀드를 팔 때 투자 위험을 반드시 알리고 이를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5년간 보존하도록 하는 규정을 제정했다.

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은행이나 증권사의 투자자 보호 장치도 문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판촉 기간에는 실적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되고, 회사도 이를 용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의 경우 직원별 등급을 매겨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상담 권한을 아예 주지 않는다. 또 수시로 암행 감찰을 해 상담 관련 규정의 준수 여부를 점검한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은 판매 관련 준칙을 어기면 형사 처벌까지 가능하지만 당국의 제재는 한 건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 보호 제도도 개선 필요=지난해 자산운용업법이 시행되면서 도입된 투자자 보호 장치에도 허점이 많다. 법은 환매 연기나 수수료 인상 등 투자자가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사안을 투자자의 절반 이상이 모인 수익자 총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수익자 총회를 한 번 열어 정족수(과반수 참석)를 채우지 못해 다시 열 때는 정족수를 따지지 않게 되어 있다.

이에 따라 한 운용사는 단 두 명의 수익자만 참석한 두 번째 수익자 총회에서 약관 변경을 의결하기도 했다. 미수금이 생기면 운용사와 수탁회사가 협의해 책임지도록 한 규정도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책임을 미루게 할 가능성이 크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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