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라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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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메라시안」이란 미국인과 아시아인의 혼혈아, 이른바「트기」다. 2차대전과 한국전, 인도차이나전쟁등으로 지난 반세기동안 미국이 휩쓸고 지나간 아시아곳곳에선 미국인들이 발자취처럼 남기고 떠난 이 혼혈아들의 문제가 쉽게 아물지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태국·필리핀·베트남등 동남아에 있는 아메라시안의 수는 약 17만명.
이중 베트남이 2만5천∼5만명으로 가장 많다. 대부분 순혈종의 민족국가인 이들 나라에서 모습이 다른 혼혈아들의 입장은 딱할수 밖에 없다.
미국세력을 물리치고 공산화에 성공한 베트남인들은「적」이 남기고 간 유산격인 혼혈아들을 철저히 구박한다. 시민권도 주지 않고 교육도 못받게한다. 4천∼1만1천명의 아메라시안을 가진 태국에선「찰리」나「우디」같은 미국이름의 아이들은 외국관광객들에게서 구걸하거나 홍등가의 똘만이노릇으로 먹고사는게 보통이다.
미국인들이 비교적 환영받았던 나라에서는 그래도 좀 나은편. 일본이나 필리핀의 혼혈아들은 한때는「나비부인아이들」이니「기념품아가」니 하고 조롱받긴했지만 요즘엔 이국적인 용모를 바탕으로 연예계나 패션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필리핀의 최고인기여배우인 「힐다·코로넬」과「엘리자베드·오로페사」는 모두 아버지가 미국인인 아메라시안이다.
하지만 한국에선「트기」와 그 엄마들은 아직 백안시된다. 미군기지부근, 술집과 디스코가 들어찬 기지촌에서는 옛위안부의 아들딸들이 새세대의 미군들에게 다시 웃음과 몸과 노력을 파는 슬픈윤회가 계속되고있다.
그래도 백인혼혈아는 좀 나은편. 놀림을 받기는 해도 동양인들은 금발과 푸른눈에서 적지않은 매력을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인혼혈아에게 주어지는건 모멸뿐이다.
행정당국들도 아메라시안은 차별대우하기 일쑤다. 『태국의 경우 관리들은 혼혈아들을 태국인으로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때가 많습니다. 출생확인서에도 국적난에 미국인 혹은 흑인으로 써넣은바람에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지못하는 수가 흔해요.』아시아5개국에서 1만2천명이상의 혼혈아들을 돕고있는「펄·벅」재단관계자의 말이다.
이 재단사람들은 아메라시안문제의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그나라 사회가 이들을 포옹하는 것이지만, 그게 쉽지 않으므로 차선책인, 해외입양을 주선할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양부모가 나서더라도 아이들이 쉽게 건너갈수없는 경우가 많다.
태국이 대표적인예. 태국법률에 따르면 입양되기 위해선 아기를 낳은 어머니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한데 혼혈아들은 대부분 갓난아기때 버려지는게 보통이므로 엄마를 찾기란 쉽지않다.
혼혈아의 99%가 사생아인 필리핀에선 법적으로 이들을 필리핀인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장애가 된다.
미국이민비자를 신청하는 수많은 보통 필리핀인들과 똑같은 자격으로 경쟁해야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아메라시안들의 곤경을 덜어주기위해 미국의회에서는 해외에서 낳은 미국인병사의 아이들의 미국입국을 보다 쉽게 해주는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1950년이후 한국이나 베트남·라오스·태국등지에서 현역 미군인이 낳게한 아이들에겐 이민시 우선권이 주어진다.
단, 아버지가 미국인임을 뚜렷이 입증해야 하며 입국후 5년간의 재정보증인이 필요하다.
뒤늦게나마 미국은 도덕적책임을 지려하고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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