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책 저런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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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사회에서는 책을 보는 눈이 너무 엄격하고 굳어져 있다. 좋게 말해서 청교도적이고, 나쁘게 말해서 권위주의적인 평가기준을 적용시키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이를테면 책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식이다. 근엄해야하고, 건전해야 하고….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책은 거리를 가다가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들만큼이나 다양하게 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런 얼굴도 있고 저런 신사·숙녀도 있듯이, 이런 책도 나오고 저런 책도 나오게 마련이고 또 나와야한다는 것이다.
「불량만화」라고 해서 비판받거나 그 이상의 조처를 감수해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만화에 대한 태도에서도 경직된 평가기준을 확인한다. 그런 것에 좀 대범할 수는 없을까. 외설이니 뭐니 하지만, 그것을 꼭 그런 측면에서만 보아야 할까.
나는 독서능력이란 무슨책을 읽든, 읽으면 읽을수록 그 수준이 향상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를 여기서 환기시키고 싶다.
불량만화, 불량만화 하지만 한두번 읽다보면 자연실증도 느끼고 또 뭔가 제대로 된 책들을 저절로 찾아 나서 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 권의 책이란, 한 사회의 문화적 질량의 정확한 귀결이다.
한 시대, 한 사회의 출판문화의 질과 양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특정의 출판인, 특정의 저자, 특정의 편집자들의 힘과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출판을 둘러싸고 있는 그 사회의 질과 양이 총체적으로 제고될 때라야 비로소 그것도 이야기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할 인식의 오류가 한 들이 아니겠지만, 책 내지 출판문화의 평가에 있어서의 경직성으로부터 해방되는 일도 큰 일의 하나다. 직업적인 부문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원천적이고 거시적으로 보는 지혜를 길러야한다는 이야기다.
사회현상이란 다양한 것이고, 또 그 다양성 속에서 사회는 발전하듯이 우리의 출판문화도 그 진정한 발전은 이 다양성 속에서 가능해진다.
심한 역설이지만, 저질의 책이 나옴으로써 양질의 책이 빛날 수 있고, 또 그런 저질의 책도 궁극적으로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거름의 역할로 지향될 수도 있는 것이다.
출판 문화의 다양성이란 그 출판문화의 기반이 튼튼함을 의미한다. 불황속에서도 새로운 얼굴의 책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이중에는 정성을 많이 쏟아 만든 것도 있고 덜 쏟은 것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회의 자동조절기능을 믿는다.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책들은 이 자동조절기능에 의해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질서를 찾게되고 또 그것은 더 큰 출판문화에로 도약할 수 있는 예비기능을 맡게 된다.
우리의 출판문화가 안고있는 문제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점들도 사회발전법칙에 따라 궁극적으로 극복되지 않을 수 없다. 한 둘의 미세한 부분에 열을 올릴게 아니라 대범하게 보고 기다리는 지혜가 절실하다.
▲1944년 경남밀양출생▲중앙대 신문학과 및 서울대대학원신문학과졸업▲동아일보기자▲현재 도서출판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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