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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복지 부담, 민간과 나눠 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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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현재 9.1%인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20년 15.7%, 2050년에 이르면 37.3%로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는 중장기 재정운용계획(案)에서 향후 5년간 재정 증가율 6.6%보다 높은 9.3%의 복지예산 증가를 계획하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낙후된 사회안전망을 가진 우리로서는 고령화 심화에 따른 문제 해결을 위해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복지를 정부 주도의 사회복지 강화만으로 해결하려 할 경우 선진국들이 이미 경험한 복지재정 악화, 국민의 조세부담률 증가 등에 따른 민간 성장잠재력 약화 등이 우려된다.

영국이나 북유럽 국가 등 복지선진국들도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우려되는 재정악화, 성장잠재력 저하를 방지하고자 사회복지 비중을 줄이는 한편 민간의 자조노력(自助努力)을 지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복지수준의 안정적인 보장을 추구하였다.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덤에서 요람까지'라는 기치를 내걸고 연금 및 의료보장 등 사회복지 혜택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 영국정부는 재정압박.경제침체 등에 직면하면서 재정지출의 지속적인 삭감, 사적(私的)보험 가입시 공적보험의 일정 부분을 면제해 주는 적용제외제도(Contracting-Out System)의 도입, 의료서비스 급부수준 축소 및 보충의료보험제도 활성화 등 사적보장영역의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도 복지수준의 지나친 확대에 따른 재정위기에 직면함에 따라 80년대부터 복지삭감, 개인계정 도입, 민영보험에 대한 세제혜택 등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통해 지속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세계은행에서도 정부재정 악화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국민에게 보다 나은 복지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공사협력(公私協力)의 다층복지체제(Multi-Pillar System)를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의 사례 등을 감안해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는 민간이 활력을 유지하면서 정부 주도의 사회복지와 민간의 자조노력이 결합된 새로운 복지모델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즉 공사협력의 원칙 하에 기초복지의 형태로 최소한의 급부를 국가가 보장하되, 그 이상의 부분에 대해서는 사적기관을 통해 개인의 자조노력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개인이 민영연금.보충의료보험 등에 가입할 경우 공적보험의 일부를 면제하거나 또는 관련 상품에 세제혜택을 강화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민간의 역할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서 총개인금융자산 중에서 보험 및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20% 정도에 머물고 있으나 미국은 30%에 근접하고 영국의 경우 50%에 육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또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칠레와 같이 정부가 철저한 관리감독을 한다는 전제에서 사회복지 부문을 완전 민영화함으로써 성장잠재력 논란을 잠재우고 복지 수준의 증대도 이룩하고 있는 사례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복지를 보장하고자 하는 선의는 귀중하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차질없이 국민복지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주도로 사회복지를 강화하기보다는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협력하는 복지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김현호 삼성금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