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가 있는 아침 ] - 걸어다니는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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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걸어다니는 바다
-이상현 시, 정혜윤 그림

꽃게가

한 덩이 바다를 물고 왔습니다.

집게발가락에 꼭 물려 있는

조각난 푸른 파도.

생선가게는 이른 아침

꽃게들이 물고 온

바다로 출렁입니다.

장바구니마다

갈매기 소리가 넘쳐납니다.

쏴아쏴아

흑산도 앞바다가 부서집니다.

꽃게는

눈이 달린 파도입니다.

걸어다니는 바다입니다.



내 품속 어딘가에도 내 살던 마을의 나무와 돌과 바람과 구름 같은 게 숨어들어 있었으면 좋겠네. 남들이 내게서 무슨 향기가 난다고 숨 들이마시는 시늉을 하는 걸 보면서, 속으로 미소 짓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 내 안에 바다가 있고 그 위로 갈매기가 날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출렁이는 파도, 지워질 듯한 먼 섬에서 들리는 새 울음소리, 아련한 하늘 끝에서 아직도 꾸며지고 있는 신들의 이야기…. 동시 한 편이 이렇듯 내 감각과 상상을 살려 놓았네.

박덕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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