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지킴이 아닌 '화가 전성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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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크릴릭 물감이 처음 보급된 무렵인 1968년 작 ‘색동 만다라’.

전성우(71)씨가 화가가 된 것은 간송(澗松) 전형필(1906~62)의 아들로 태어난 팔자가 크다. 한국 미술의 보물창고인 간송미술관에서 어린 시절부터 좋은 서화를 실컷 본 덕도 있지만, 주말이면 도화지 한 장씩을 그리게 하고 구하기 힘든 물감을 사주며 이마동 선생에게 일찌감치 그림 공부를 보낸 간송의 깊은 뜻이 더 컸다. 그는 한국 전통미술의 지킴이였던 선친을 "넘을 수 없는 산"이라고 돌아본다.

27일부터 6월 19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여는 '전성우 50년의 발자취 1955~2005'는 전성우씨가 그렇게 맺은 그림과의 인연을 되새기는 회고전이다.

간송미술관을 지키는 큰 일에 가려 제대로 떨쳐보이지 못한 그의 그림 사랑이 60여 점 작품으로 펼쳐진다. 전씨가 50년대 미국 유학 시절에 남기고 온 초기작을 우연히 되찾아 이번 전시회가 더 풍성해졌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산실인 캘리포니아 미술학교에서 닦은 솜씨로 60년대 후반 한국 화단에 서구 첨단의 추상표현주의 양식을 소개한 그의 영향을 더듬을 수 있다.

전씨는 자신의 그림 세계를 정토로 가는 길로 본다. 그에게 붓질은 "마음의 때를 벗겨내는 정화의 행위"요, 그가 즐겨 그리는 연작 '만다라'는 작가가 추구하는 순수평화의 마음 상태를 상징한다.

그는 화면을 '깊이의 공간'과 '시간의 겹'을 지닌 곳으로 보고 거기에 빛에 가까운 기운을 담으려 자신을 버린다. 화가는 바닥에 눕혀진 캔버스에 물감을 얹기보다는 물감 얼룩이 천천히 드러나게 함으로써 그 자연스러운 시간의 겹이 보는 이의 마음에 이르도록 놓아준다.

'만다라'는 미술에서 동서양의 구분이 의미없다고 말하는 한 '환쟁이'가 깨달음에 이르고자 영혼으로 토해낸 말간 액체같은 그림이다. 02-3217-0233.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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