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대사증후군 환자, 독특한 고지혈증 특징으로 심혈관질환 위험 높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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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병원 심장내과
교수 이봉기

동맥경화를 논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뇌리에는 환자 두 분이 떠오른다. 한 분은 고혈압으로 치료를 받고 계시는 현재 90대 초반의 A라는 어르신이고, 다른 한 분은 40대 초반에 심근경색증을 앓게 되어 치료를 받고 있는 B라는 분이다. 마른 몸집의 A옹은 소싯적부터 담배를 틈틈이 피워 오셨고 끊으시라는 내 권유를 귓등으로 흘리면서도 혈압약은 열심히 드시고 있다. 연세도 많으시고 고혈압에 담배도 피우시니 심장혈관이 걱정되어 관상동맥 CT 촬영을 해보았는데 웬걸... 심장의 혈관은 매끈하고 예쁘기만 했다. 고령자들 대개에서 보이는 혈관의 올록볼록 좁아진 동맥경화 병변을 찾을 수가 없었던, 타고 났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는 않는 신기한 환자이다. 한국 남성 사망원인 제 2위인 ‘심혈관질환’은 아마도 A옹은 빗겨갈 것 같다. 이와 달리 B씨는 초등학생 자녀 둘을 가진 가장으로서 3개월 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가슴을 움켜쥐고 응급실로 실려 들어왔던 환자이다. 막혔던 심장혈관을 응급으로 열어주는 치료를 받고 난 후 통원치료를 하고 있는데 이 분의 혈관은 칠팔십대 노인들에서나 종종 보이는 지저분한 협착을 보였다. 담배는 피우지만 피운 세월로 따지자면 A옹의 3분의 1이나 될까 싶은데, 유독 퉁퉁한 뱃살과 고지혈증은 눈에 띄었다. 누구는 혈관질환으로 고생하고 누구는 멀쩡한 것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결국은 조상탓이라는 민망한 대답에 이르게 된다. 가족들이 줄줄이 병원에 함께 다니게 되는 경우는 의외로 많이 목격하는 현상이다. 혈관에 기름이 쉽게 끼는 “체질”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체질이 의심되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상태가 바로 ‘대사증후군’이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은 함께 다니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이러한 경우 복부비만도 흔하며 이렇게 떼를 지어 나타나는 비정상 상태를 일컬어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이라 한다. 이러한 대사증후군이 발생하는 기전은 ‘인슐린저항성’으로 설명된다. 인슐린저항성이 있는 경우에는 포도당의 혈중농도가 잘 안 떨어지기에 인슐린이 더욱 많이 분비되어 결과적으로 핏속의 인슐린농도가 높아지는 ‘고인슐린혈증’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혈압, 혈당과 혈중의 지방질을 높이고 내장에 기름을 모으게 되어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이 3종세트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대사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혈압 130/85mmHg 이상, 공복혈당 100mg/dl 이상, 혈중 HDL이 남성 40, 여성 50mg/dl 미만, 허리둘레 남성 90, 여성 80cm 이상, 혈중 중성지방이 150mg/dl 이상, 이중에서 3가지 이상에 해당된다면 대사증후군이라 할 수 있다.

대사증후군 환자의 고지혈증은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데 혈관을 유난히 쉽게 망가뜨리는 성질이 있어 콜레스테롤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이라 불리는 LDL 콜레스테롤은 일반적으로 그 수치의 높음에 비례해서 심혈관질환의 발생위험도 높아진다. 그런데, 대사증후군 환자의 경우에는 중성지방(TG)이 높고 LDL 콜레스테롤 수치는 일반적인 고지혈증 환자에 비해서는 낮은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도 낮을 것 같은 착시를 유발한다. 이런 환자의 경우 단순히 LDL의 수치만을 보면 혈중 지질에 대한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간과할 수가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서 혈중 중성지방이 증가할수록 LDL의 수치는 높지 않더라도 성질이 나빠지는 바, 입자가 작고 단단해 혈관으로 쉽게 스며들어 쌓일 수 있는 형태인 ‘작고 단단한 LDL(small dense LDL)’이 상대적으로 많아지게 된다. 때문에, 대사증후군이 있을 경우 심근경색증, 협심증 같은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확률은 1.5~3배까지 증가하며, 당뇨병이 생길 위험은 3~5배 증가한다. 더불어 지방간이나 수면무호흡증도 덤으로 따라다니게 된다. 여기에 흡연까지 하면 혈관의 손상은 더욱 가속되며, 혈관의 손상은 혈관벽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두꺼워지고 좁아지는 동맥경화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대사증후군 자체로는 증상이 없고 몸이 당장은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고 상태를 방치하다가 합병증이 생기고 나서야 부랴부랴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나이가 들수록 적게 먹고 동물성지방의 섭취를 줄이고 규칙적으로 운동하여 뱃살을 빼고 팔다리의 근육을 유지해야 한다. 흡연자라면 금연은 물론이다. 이러한 생활습관을 지키는 것은 건강한 이들 모두에게도 권장되는 일이며 특히 대사증후군 환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하다.

이러한 생활습관개선과 함께 필수적인 것이 고지혈증에 대한 약물치료이다. 혈중의 콜레스테롤을 줄여주는 효과적인 약품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중으로 스타틴(statin) 제제들이 대표적이고, 그 효과는 심혈관질환의 발생을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여 줄 정도로 강력함이 입증되었다. 스타틴제제는 간에서의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하는 데, 최근에는 장에서 흡수되는 콜레스테롤도 줄여주는 약들이 함께 사용되고 있어 그 효과가 더욱 좋아졌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상담을 하면 필요시 알맞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합병증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미리 예방적 치료에 성실히 임하면 혈관질환으로 고생하며 조상탓을 할 일은 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을 부디 잊지들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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