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아하, 아메리카] 레이건 총탄 몸으로 막던 미 비밀경호국, 왜 망가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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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3월 30일 미국 워싱턴 힐튼호텔 앞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범인의 총에 맞은 경호원 티머시 매카시(맨 앞쪽)가 쓰러져 있다. [중앙포토]

1981년 3월 30일 오후 2시27분 미국 워싱턴 힐튼호텔 현관 앞. 미 노동자총연맹 집회에 참석했던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건물에서 나오는 순간 6발의 총성이 울렸다. 정신병을 앓아온 25세의 대학 중퇴생 존 헝클리가 짝사랑하던 여배우 주디 포스터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레이건을 저격한 것이다. 총알 2발은 레이건의 가슴과 오른쪽 팔을 관통했다. 경호원 티머시 매카시는 몸을 날려 대통령을 보호하다 배에 총을 맞았다. 또 다른 경호원 제리 파는 순식간에 레이건을 대통령 전용 방탄차에 밀어 넣었다.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된 덕에 레이건은 목숨을 건졌다. 경호원들의 맹활약으로 이들의 이미지는 급상승하고 이들을 소재로 한 ‘보디가드’ 같은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사랑받던 비밀경호국이 요즘 최악이다. 지난달 19일 담을 넘은 40대 괴한이 백악관 이스트룸까지 침범했으며 다음날에는 다른 남자가 차를 탄 채 백악관 경내로 무단 침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뿐 아니다. 그 직후 폭력 전과가 있는 사설 보안업체 직원이 총을 가진 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엘리베이터에 탔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실 경호 시비는 극에 달했다.

 비밀경호국 논란은 이번만이 아니다. 올 3월에는 오바마의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현지 답사에 나선 경호원 3명이 호텔에서 술판을 벌여 물의를 일으켰다. 재작년 4월에는 오바마의 콜롬비아 방문에 앞서 먼저 도착한 경호원 11명이 매춘부를 불러 성매매를 한 게 드러났다. 이어지는 사고로 결국 첫 여성 비밀경호국장 줄리아 피어슨은 지난 1일 사직해야 했다.

 한때 세계 최강이던 미 비밀경호국이 왜 이렇게 망가졌나. 미 언론들은 이를 두고 비밀경호국의 역사 및 기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먼저 국토안보부로 관할이 바뀐 게 화근이었다. 비밀경호국은 원래 남북전쟁 끝 무렵인 1865년 위조 지폐 단속을 위해 재무부 산하에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그러다 190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암살 사건이 터지면서 대통령 경호까지 떠맡게 된다.

 비밀경호국은 이로부터 100년 후인 2001년 9·11 테러로 또 한번 변신한다. 9·11이 터지자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국토안보부를 창설하고 2003년 비밀경호국을 이 밑으로 옮긴다. 출범 138년 만에 재무부에서 국토안보부로 소속이 바뀐 것이다.

 이 변화가 비밀경호국의 업무 능력 및 사기 저하를 가져온 최대 원인으로 지적된다. 재무부 산하에서 독립적인 위치를 누리며 풍족한 물적·인적 지원을 받던 비밀경호국이 국토안보부 산하로 재편되면서 위축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 미 재무부 내에는 비밀경호국 외에 보안이나 첩보 문제를 다루는 기구가 전무했다. 자연 특수성을 인정받으며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간섭도 받지 않았다.

반면 국토안보부 휘하에는 비밀경호국 외에도 연방재난관리청(FEMA)·해안경비대(Coast Guard)·이민세관집행국(ICE)·이민국(USCIS)·관세청(CBP)·교통보안청(TSA) 등 안보 관련 6개 기관이 속해 있어 이들 간의 치열한 예산 및 인력 경쟁이 불가피했다. 그 결과 비밀경호국은 옛날 같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2005년 이후 올해까지 미 연방 행정부와 국토안보부 예산은 각각 48%, 54%씩 늘었다. 반면 비밀경호국의 올 예산은 15억8500만 달러로 35% 증가에 그쳤다. 국토안보부 내 다른 기관보다 예산 지원이 훨씬 인색했다는 얘기다.

 과도한 업무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창설 149년을 맞은 지금도 비밀경호국의 임무는 경호와 함께 금융·결제 시스템 보호가 주요 업무다. 날로 지능화되는 금융 사기 및 사이버 범죄 소탕에도 소홀해선 안 된다. 특히 정보기술(IT)의 신속한 발전만큼이나 관련 범죄가 다양화되면서 이 분야로의 인적·물적 투자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밀경호국 전체 인원은 크게 늘지 않아 경호 분야가 소홀해진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비밀경호국 전체 직원은 6572명으로 2005년에 비해 66명이 늘었다. 1% 증가에 그친 것이다. 사퇴한 피어슨 국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적정 인원보다 550명가량 부족하다”고 실토한 바 있다.

 한편 이런 구조적 문제로 비밀경호국 강화는 책임자 경질로는 이뤄질 수 없다는 공감대가 미 정·관계에 형성돼 있다. 미 의회는 오는 11월 초까지 비밀경호국 문제점에 대한 조사를 벌인 뒤 근본적인 수술에 나설 계획이다. 제이 존슨 국토안보부 장관도 TV에 출연해 “비밀경호국의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어떤 조치가 이뤄질지 두고 볼 일이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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