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잊고 산지 오래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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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종로구와룡동1-. 낙엽이 가득 떨어져 딩구는 위에 찬 가을비가 흩뿌리고있는, 서울한복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정밀(정밀)속에 잠겨있는 악선제들에도 이미 가을이 깊다.
4일로 8순을 맞은 가혜 이방자여사는 쇼트커트머리에 간편한 양장차림. 동안(동안)의 모습에는 고운티가 남아있다. 목소리도 젊은이 못지않게 낭랑하고청력도여전하다.
『나날이 너무너무 바쁘니까 나이도 잊어버리고 살아요. 주변에서 모두들 알려주시니까 생일을 아는거지요.』 일본황실의 「나시모또」(이본궁) 「모리마사」(수정)왕의 제1왕녀로 태어나 19세때 이왕조 제28대 왕세자인 이은공과 결혼한이래 60여년의 세월.
몰락한 왕가의 비운과 역사의 시련을 딛고 살아온 그의 생애이건만 너무 티없이 맑고 포근하기만한 모습이다. 63년 일본에서 환국한지 18년째. 영친왕이 서거한지도 이미 11년째가 된다.
이여사의 8순을 기념하여 여사가 세운 수원자혜학교는 4일 기념관에서 생신축하 종합발표회를 열고, 자행회는 6일 서울앰배서더호텔에서 정박아를 위한 자선의 밤을 준비하고 있다. 이방자여사의 도화초대전도 4일(9일까지) 롯데화랑에서 첫 테이프를 끊는다. 『마마(영친왕)께서의 생전의 뜻이 정박아·지체부자유아를 돕는 것이었읍니다. 그분의 뜻을 받들어 65년에 세운것이 자혜학교고 명휘원입니다.』 정박아 교육기관인 자혜학교에는 현재 1백30명의 학생이, 지체부자유아의 기술습득을 위한 명휘원에는 90명의 학생이 교육을 받고있다는 설명이다. 명휘원이 82년도부터는 특수학교로 인가가 난것이 무엇보다도 이여사를 기쁘게 하고있다.
8천여평에 자리잡은 악선재는 이여사가 거처하고있는 본채와 신관, 그리고 62년 환국한 덕혜 옹주가 머무르는 수강재, 그리고 며느리 「줄리어」여사가 살고있는 석복헌등 모두 4채의 건물로 되어있다. 외아들 구씨는 세계 건축가협회 자문역을 하면서 주로 미국과 일본에 머무르고있다. 편지로, 전화로 자주 문안을 해온다고.
8순의 나이라고는 믿을수없게 건강하고 단정한 모습의 이여사는 아침6시30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운동을 하고 1시간정도 서화에 몰두한다. 아침식사는 8∼8시30분께. 9시부터는 정식일과가 시작되는데 하루시간의 90%이상을 자혜학교와 명휘원일로 보낸다. 저녁식사는 6시30분께. 식사는 채식중심의 소식인데 아침은 코피와 빵·야채샐러드, 점심은 밥종류, 저녁은 수프와 야채샐러드 종류를 든다.
아직 두학교의 운영이 궤도에 오르지않아 여사는 틈틈이 제작한 칠보와 서화작품을 판매하여 운영에 보태고 한국과 일본라이언즈클럽·로터리클럽의 지원도 받고있다.
『두학교 운영이 궤도에 오르고, 또 불우한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부산쯤에 하나 세웠으면 하는것이 꿈입니다.』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며 총총히 방을 나서는 뒷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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