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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극한의 세계일주 항해 … 바다 사나이를 무엇이 막으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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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무기항 단독 요트 세계일주’에 도전하는 다큐멘터리 PD인 김승진씨(사진 왼쪽). [사진 김승진] 2011년 요트 단독 세계일주에 성공한 윤태근 선장이 이번엔 무기항 세계일주에 도전한다(사진 오른쪽). [송봉근 기자]

300일 넘게 항구에 들르지 못하고 오직 항해만 해야 한다. 항해하다가 배가 고장 나면 선장 혼자서 고쳐야 한다. 항해 중에 식량이나 생수를 지원받을 수 없으니 출발할 때 모두 실어야 한다. 항해기간에 적도를 두 번 이상 통과해야 한다. 모든 경도를 한쪽 방향으로 통과하여 출발항구로 돌아와야 한다. 항해 중에 남극해 구간인 칠레 최남단 ‘케이프 혼’을 통과한다. 몸이 아파 의료지원을 받으면 포기로 간주된다. 외부 지원이라고는 기상정보뿐이다.

 인간이 만든 ‘최악’의 항해인 ‘무기항· 무원조 단독 요트 세계일주’의 조건이다. 지금까지 여기에 많은 모험가가 도전했지만 바다는 지금까지 극소수에게만 허용했다.

 이 극한의 항해에 한국인 2명이 각각 도전한다. 다큐멘터리 PD인 김승진(52)씨와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윤태근(52) 선장이다. 두 사람은 1962년생 동갑내기다. 한 나라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도전하기는 처음이다. 만약 두 사람이 성공한다면 해양국가로의 한국 위상은 높아진다는 게 요트업계의 평가다.

 김 선장은 2013년 대서양 카리브해에서 한국까지 2만6000㎞의 태평양 횡단을 했다. 그는 다음 달 18일 ‘아라파니호’를 타고 충남 당진시 왜목항을 떠나 내년 5월 왜목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윤 선장은 2011년 한국 국적 요트로 부산을 떠나 부산으로 돌아온 첫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그는 다음 달 21일 ‘스프리트 오브 코리아’호를 타고 부산 수영만이나 경남 통영항을 떠나 내년 5월쯤 같은 곳으로 돌아올 계획이다.

 두 사람의 항해 코스는 한국~태평양~케이프 혼(칠레 남단)~케이프 타운(남아프리카공화국)~순다해역(인도네시아 자바섬 아래)~한국까지 4만㎞(2만1600마일)로 비슷하다. 요트 길이도 13m로 같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여건은 너무 다르다. 선령(船齡) 9년인 김 선장의 아라파니호는 프랑스에서 건조한 3억5000만원짜리로 무기항 세계일주에 적합하다. 윤 선장의 스프리트 오브 코리아는 선령 30년 된 800만원짜리 퇴역 레이싱 요트다. 윤 선장은 이 요트를 최근 일본에서 구입해 부산으로 직접 몰고 왔다.

 항해경비도 김 선장은 8억5000여만원, 윤 선장은 8000만원으로 10배쯤 차이가 난다. 김 선장은 충남 당진시 등이 경비 일부를 지원했지만 윤 선장은 아직 주변의 지원을 못 받고 있다. 항해지원 조직도 김 선장은 희망항해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윤 선장은 혼자 준비하고 있다. 윤 선장은 경비가 모자라 자신이 보유한 중고 요트를 팔려고 싸게 내놓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의식하지 않고 항해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로 경쟁을 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윤 선장은 “악조건에서 성공하면 더 가치 있는 항해가 될 것”이라며 “두 사람이 동시에 도전하면 국민은 바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서 좋다”고 말했다. 김 선장은 “육상지원팀에 윤 선장의 위치를 (내게) 알리지 말도록 지시해 놓았다”며 “세월호 사건으로 슬퍼하는 국민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기항·무원조 단독 요트 세계일주는 1969년 영국인 로빈 녹스존스톤이 312일 만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당시 1년 가까이 땅을 밟지 못한 그는 건강을 점검하느라 우주비행사 수준의 정밀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호리에 켄이치가 74년 270일 만에 두 번째로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중국인 구오추안이 성공해 국가적 영웅이 됐다. 서로 다른 조건에서 떠나는 두 사람 가운데 누가 항해에 성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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