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세 위력에 아파트 시장 급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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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부가 서울 강남구와 경기도 광명시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고, 부동산값 상승세를 주도한 이들 지역 22개 아파트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하자 일대 부동산시장이 급속하게 얼어붙고 있다.

값이 일주일 전에 비해 5백만~2천만원 정도 빠졌으나 매수세가 종적을 감춰 중개업소에는 썰렁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특히 최근 집을 팔아 투기지역이 적용되는 이달 30일 이후로 잔금 수령일이 잡힌 매도자들은 양도세를 종전보다 훨씬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강남구 대치동 A 공인중개사무소 金모씨는 "매수자에게 30일 이전에 잔금을 치러 달라고 요구하거나 미리 등기를 넘겨주겠다고 제의하는 매도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 1단지 13평형은 지난주만 해도 4억원까지 거래가 됐으나 지금은 3억8천5백만~3억9천만원으로 일주일 새 1천만~1천5백만원 내렸다.

개포 주공 2.3.4단지도 1천만원 이상 호가가 빠졌다. 개포동 남도공인 이창훈 사장은 "개포 주공단지는 재건축을 내다보고 투자용으로 구입한 사람들이 많았으나 매수세가 거의 끊겼다"고 말했다.

인근 한 중개업자는 "계약금과 잔금을 한꺼번에 치르면 시세보다 1천만~2천만원 싸게 팔겠다는 급매물도 단지별로 한두 개씩 나온다. 중도금을 받지 않은 매도자들은 매수자에게 해약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가 많은 강남구 삼성동.역삼동 일대도 거래가 끊긴 가운데 값이 소폭 빠졌다.

삼성동 영동공인 박철래 사장은 "영동 AID차관 아파트의 경우 지난달 사업승인이 나 실거래가로 양도세를 내왔지만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매수세가 위축되면서 지난주보다 3백만~5백만원 내렸다"고 전했다.

서울 등 외지인 투자자들이 많이 몰렸던 광명도 마찬가지다. 광명시 철산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매수.매도자에게 연락해 잔금일을 앞당기거나 소유권 이전을 마치라고 권유하고 있다"며 "잔금일이 5월로 잡혀 있는 물건이 5~6건 정도 된다"고 말했다.

광명시 하안동 래미안공인 배응오 사장은 "당분간 거래 공백은 예상되나 내년 4월 경부고속철도 개통과 광명역 인근 신도시 개발에 대한 기대가 있어 값은 크게 빠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투기지역에 이어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키로 한 대전 서구와 유성구는 아파트 청약 열기가 가라앉을 전망이다.

유성구 노은동 서강공인 이영길 사장은 "투기 수요는 줄 것으로 보이지만 워낙 수요가 많아 투기과열지구로 묶는다고 해서 기존 아파트와 분양권값이 급락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거래 질서를 교란해 국세청이 단속하고 있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들은 벌써 잠수하기 시작했다고 강남지역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조치로 늘어난 양도세 부담을 매수자에게 떠안기려고 호가가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부동산시장이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 같다"며 "그러나 이미 상승세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 만큼 투기지역 지정이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정선구.박원갑.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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