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시안게임] 아금아, 아빠가 약속 지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정지현이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1㎏급 결승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딜쇼드존 투르디예프에 테크니컬 폴승을 거둔 뒤 두 손을 치켜들고 기뻐하고 있다. 준결승에서 부상을 입은 오른 눈이 퉁퉁 부어있다. [인천=오종택 기자]

시상대에 오른 정지현(31·울산남구청)은 목에 걸린 금메달을 바라봤다. 12년에 걸친 도전 끝에 힘겹게 따낸 결실이었고, 어린 딸과 아들에게 안겨주고 싶었던 귀한 선물이었다.

 정지현은 30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1㎏급 결승에서 딜쇼드존 투르디에프(23·우즈베키스탄)를 누르고 우승했다. 최대 고비는 준결승이었다. 정지현은 이란의 강자 사이드 압드발리(25)를 만났다. 압드발리는 2010년 광저우 대회 66㎏ 금메달리스트다. 경기 초반 4-0으로 앞서나간 정지현은 연속 세 번 기술을 허용해 4-6으로 역전당했다. 이어 두 어깨가 매트에 1초 이상 닿으면서 폴로 지는 듯했다. 그러나 한국 벤치는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고, 압드발리가 목을 감싸안는 반칙을 했음이 인정됐다. 극적으로 위기를 벗어난 정지현은 9-6으로 힘겹게 역전승했다.

 오히려 결승은 쉬웠다. 준결승에서 입은 부상으로 눈이 부은 정지현은 투르디에프를 상대로 엉치걸이를 성공시킨 데 이어 업어치기까지 성공시켰다. 9-0 테크니컬 폴승. 경기가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분 22초였다. 광저우 대회에서 은 3, 동 6개로 노골드에 그쳤던 한국 레슬링은 정지현의 금메달로 8년만에 금맥을 뚫었다.

 정지현은 2004년 혜성처럼 나타났다. 무명이었던 정지현은 아테네 올림픽 60㎏급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냈다. TV 광고 모델로 나서는 등 심권호의 대를 잇는 레슬링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후 정지현은 오랫동안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아시아선수권에서만 한 차례 정상에 올랐을 뿐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부진했다. 정지현은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나선 정지현은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해 12월 국제레슬링연맹(FILA)이 체급 조정을 하면서 신설된 71㎏로 체급을 올리는 거였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원래 60㎏급으로 시작했던 그에 비해 훨씬 체격이 큰 선수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번 대회 71㎏에 출전한 선수 중 정지현(1m65㎝)보다 키가 작은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준결승과 결승 상대도 그보다 10㎝ 가량 컸다.

 몸무게를 빼기도 힘들었지만 불리기도 고통스러웠다. 정지현의 평소 몸무게는 69~70㎏다. 늘 감량만 하던 그는 상대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4~5㎏ 가량 체중을 불렸다. 워낙 체구가 작고 지방량이 적은 그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지현은 “2004년 이후 국제대회에서 거의 우승을 하지 못했다.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를 악물고 버틴 끝에 귀중한 금메달을 따냈다”고 말했다. 그는 “두 체급이나 올렸기 때문에 덩치가 훨씬 큰 선수들과 싸워야 했다. 체중을 불리느라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힘 대 힘으로 승부하면 승산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스피드와 기술, 지구력으로 승부를 걸었다”고 덧붙였다.

 ‘아빠’ 정지현의 약속도 뒤늦게 지켰다. 그는 광저우 대회를 앞두고 첫 딸 서현(4)의 태명을 ‘아금이(아시안게임 금메달)’, 런던 올림픽 때는 둘째 아들 우현(3)의 태명을 ‘올금이(올림픽 금메달)’로 지었다. 그러나 두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정지현은 경기장을 찾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금빛 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지현은 “늦었지만 아이들에게 금메달을 안겨주겠다는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말했다.

인천=김효경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