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통시장, 혁신해야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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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02년 시작해 지난 13년간 3조3400억원의 세금을 쏟아부은 전통시장 지원 사업이 삐걱대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필요하지도 않거나 효과가 의심되는 사업에 무분별하게 지원이 이뤄져 세금이 낭비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에스컬레이터 등 시설물을 일단 설치부터 해놓고는 막상 완공 뒤에는 무작정 놀린다든지, 주차공간이 있는데도 새 주차장 건설 지원비를 타가서는 공원설치 용도로 전용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이렇게 세금이 줄줄 새는데도 사업 집행 주체 등이 법규 미비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전통시장 지원사업은 2002년 시작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감사원 감사(특정감사)조차 받지 않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세금낭비를 막고 전통시장 지원사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려면 선정 절차와 지원 체계부터 새롭게 정비해 정말 필요한 사업인지, 지원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있을지, 비용은 적정한 수준인지 등을 꼼꼼하게 따지게 해야 한다. 지원 뒤에는 철저한 사후 관리와 감독으로 지원금이 전통시장의 발전과 지역 주민의 이익에 제대로 쓰이는지를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은 물론 지역 주민과 경영·지방자치·홍보 전문가가 고루 참여해 다양한 각도에서 사업 타당성을 철저하게 살필 수 있게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관의 전시성, 치적 홍보성 사업을 막고 예산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지원금에 의존하는 상인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며 지원금으로 시설이나 늘린다고 전통시장에 손님이 모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손님을 부르고 지갑을 열게 하려면 매력적인 콘텐트를 다양하게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한 전통시장의 혁신이다. 실제로 시장 상인과 주민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전통시장이 지역사회의 생활중심지 노릇을 하면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탈바꿈한 혁신 사례도 적지 않다. 문화·동아리·취미 활동 공간으로 탈바꿈한 충북 청주시 가경시장이나 한우특화거리 조성으로 연매출 1000억원의 명물시장이 된 전남 장흥군 정남진토요시장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