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소 한 봉지 사면 과자는 덤' 과대포장에 화난 네티즌 … '과자봉지배' 한강 도하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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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사실 잡담이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이야기들 대부분 시시껄렁하거나, 한가로운 이야기들이다. 퍼거슨 감독은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도 했다. 그런데도 인터넷에는 ‘쓸데없는’ 연예인 이야기, TV 이야기, 생활 잡담들로 가득하다. 오죽하면 인터넷에 글 쓰는 이들은 스스로를 ‘잉여’라 부르기도 하겠나.

 그런데 세상은 엄숙하고 고고한 이야기들로만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 이른바 스몰 토크(Small Talk)가 세상을 만든다. 거대담론과 진지한 토론이 세상을 구할 수 있었다면 우리 사회는 진작에 천국이 되어 있어야 했다. 국가 정상들의 미팅도 날씨 이야기나 사소한 유머로부터 시작하지 않던가.

 자주 보고, 찬찬히 보면 사랑스럽다. 인터넷의 이야기들도 그렇다. 인터넷에서 일어난 일들, 용어들, 습관들을 해석해보자. 사람들이 터놓고 이야기 나누는 곳이 인(人)터넷이라면 그 속에 진짜 우리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새로운 변화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칼럼 ‘호모디지쿠스(Homo Digicus)’에서 그걸 시도해보려 한다. 호모디지쿠스는 디지털 시대를 사는 신인류를 뜻한다.

가수 김창렬씨는 한때 사고뭉치로 통했지만 결혼 후 훌륭한 가장으로 칭찬을 받는 연예인이다. 대체로 인터넷에서도 우호적이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단어 중에 ‘창렬식품’이 생겼다. 가격 대비 부실한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과자, 순대, 떡볶이 같은 서민음식과 인터넷 이용 시간이 가장 많은 한밤중 출출할 때 생각나는 치킨도 포함된다.

 과거 ‘김창렬의 포장마차’라는 즉석식품의 품질이 좋지 않았던 데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참 오래전 일이다. 게다가 즉석식품 제조 회사나 ‘포장마차’라는 브랜드보다 광고 속 연예인 이름이 싸구려 음식을 뜻하는 형용사가 되어버린 셈이니 특이하다. ‘대창렬시대(경제적으로 힘들다는 뜻. 대공황시대의 어감)’ ‘창렬떡볶이’ ‘창렬순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자의 과대포장에 분노한 젊은이 3명이 28일 과자봉지로 만든 배로 한강을 건너는 이벤트를 벌인다. 사진은 이들이 유튜브에 올린 예고 영상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서비스!’ 캡처화면.

 사실 네티즌들은 장난삼아 창렬음식이라는 표현을 반복 사용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가수 김창렬씨를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부실한 서민음식조차도 사먹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처지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에 한 일본인이 올린 글이 있었다. “한국에선 최저 시급이 550엔 정도인데 (대용량 포장의) 과자 가격이 400엔이라며 한 시간 동안 일해도 과자 한 봉지 못 먹는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일본 네티즌의 조롱도 조롱이지만, 그렇게 겨우 사먹을 수 있는 과자가 대부분 ‘질소봉투’라는 데 현실의 안타까움이 있다. ‘질소 한 봉지를 사면 과자를 덤으로 약간 딸려 준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심지어 과자가 이제 고급 식품이 되어 특별한 기념일에만 먹게 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다. 빈한한 젊은이들에게 과자 한 봉지의 위안조차 못 주는 현실이 가슴 아프기까지 하다.

 학구적인 네티즌들은 ‘찌질하게’ 과자봉지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새우깡이나 고래밥 같은 과자 개수를 일일이 세어 올렸다. ‘잉여스럽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외국 과자를 구해 개수를 비교해 편차를 구하기도 했다. 과자 봉투 전체 포장물의 중량과 크기, 실제 먹는 과자 내용물의 차이를 포장 해체 과정에 따라 연속 사진으로 올린 게시물도 흔하다. 인터넷에는 과자 포장이 점점 비대해져 나중에는 과자 하나를 초대형 컨테이너에 포장하게 될 것이라는 동영상까지 올라왔다.

 분석만 하기 보다 직접 실천으로 보여주겠다는 행동파 네티즌들도 나타났다. 과자의 과대포장에 분노한 일단의 젊은이들이 한강에서 과자봉지로 배를 만들어 한강을 건너겠다고 나선 것이다. 28일 오후 3시에 한강공원에서 질소가 가득한 과자봉지 배로 한강을 건너겠다는 것인데, 과자봉지를 가져오는 네티즌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과자 회사들은 이 성난 소비자 이벤트에 자사의 과자 브랜드가 사진 찍히지 않기 위해 뭔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는 법. 네티즌들이 창렬음식에 대항해 만들어낸 이미지는 ‘혜자김밥’이다. 탤런트 김혜자씨가 광고하는 이 김밥은 내용이 실하다는 평가다. 물론 주관적이지만, 일부러 창렬음식과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김밥에 대한 칭찬은 다른 서민음식 제조 회사들에 들으라는 듯 더 요란하다 “사먹어야겠네요” “믿음이 가네요” “혜자롭다” 심지어 혜느님, 갓혜자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편의점 과자, 배달음식, 거리 분식은 서민들의 위안이고 젊은이들의 친구였다. 조금 덜 벌어도 더 넉넉했던 그 시절, 값싸고 푸짐했던 옛날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임문영은 온라인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지켜봤다. 1993년 한국PC통신에서 일하면서 『하이텔 길라잡이』를 출간해 ‘길라잡이’라는 이름의 컴퓨터 사용설명서 출판 붐을 일으켰다. 창업멤버로 ‘나우누리’에 들어가 시솝(운영자)으로 활동했다. 이후 iMBC 센터장을 거쳐 ‘시어스’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미디어 전략 컨설팅, 온라인 여론분석, 솔루션 개발 등을 한다. 저서로는 『디지털 세상이 진화하는 방식』 『Do it! facebook』 『디지털 시민의 진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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