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따르라니" … 청와대에 각 세우는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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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선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먼저 이병석(4선·포항 북)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해양경찰청 해체 방침에 제동을 걸었다. 이 의원은 “세월호 사건 하나만 가지고 해경을 완전히 해체하겠다고 하는 게 국민들에게 충분히 납득되는지, 공론의 장을 만들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일시적으로 국민의 분노를 샀다고 해서 해양 주권을 지키는 기관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리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결정이란 의구심을 살 수 있다”며 “전방 총기 난사나 윤 일병 사망 사건이 났다고 군대를 해체할 수 없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해경 해체는 박 대통령이 지난 5월 19일 대국민담화에서 발표한 세월호 후속대책 중 핵심이다. 이른바 ‘VIP(대통령) 관심사항’에 대해 여당의 중진이 반기를 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병국(4선·여주-양평-가평) 의원은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거론하며 “사회적 파장이 크고 찬반 여론이 첨예한 사안들에 대해 밀어붙이기식 정책추진은 여당의 독선으로 보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심재철(4선·안양 동안을) 의원은 증세 논란에 대해 “정부가 ‘증세는 없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발목이 잡혀, 증세를 하는데도 증세가 아니라는 식의 어설픈 변명을 계속하다간 국민의 신뢰만 더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이병석·정병국·심재철 의원은 친이계로 박 대통령과 가깝다곤 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당 공식회의에서 청와대·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해 이처럼 쓴소리가 릴레이로 나온 건 전례가 없다.

 당 안팎에선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등장한 뒤 새누리당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탈박(脫朴)’ 현상의 한 단면이라는 얘기가 많다.

 김 대표는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에 친이계·소장파를 대거 기용했다. 당 혁신위원장에도 줄곧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앉혔다. 머잖아 정몽준 전 의원도 당에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반면 친박계는 구심점이었던 최경환 전 원내대표가 정부(경제부총리)로 빠진 뒤 뚜렷한 당내 구심점이 없다. 김 대표와 경쟁했던 서청원 최고위원은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청와대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한다’는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김 대표 본인이 최 부총리와 공개적으로 재정건전성 논쟁을 벌인 것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의원은 “세월호 국면에선 의원들이 그동안 청와대에 여러 문제가 있어도 말을 않고 침묵을 지킨 측면이 있었다”며 “여당의 건전한 비판에는 청와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의도적으로 청와대와 파워 게임에 나섰다고 보기는 힘들다. 한 측근은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성공해야 자신의 정치적 미래도 보장받는다는 생각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여러 채널을 통해 김 대표에게 신뢰의 메시지를 던졌으며, 김 대표도 국정 운영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해외 순방에 나서는 박 대통령을 만나러 공항까지 나간 게 대표적이다. 다만 지난해부터 불화를 빚어온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는 김 대표가 아직도 껄끄러운 관계여서 당·청 관계의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19개월간 선거가 없는 틈을 타 청와대가 인기 없는 정책을 한꺼번에 새누리당에 ‘숙제’로 던진 것도 볼멘소리가 나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 쌀 관세화, 담뱃값 인상 등 모두 이해관계 집단의 저항을 뚫어야 하는 사안들로 2016년 총선을 치러야 하는 당으로선 지지율에 별로 보탬이 안 된다. 조해진 의원은 “청와대가 선거 없는 기간에 모든 걸 다 하겠다는 건 강박일 수 있다. 좀 더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데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이면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설득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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