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시안게임] 댄싱퀸이 키운 펜싱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지난 20일 고양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아게임 여자 펜싱 사브르 준결승전에서 김지연(오른쪽)이 중국 대표 센첸의 복부를 정확히 찌르는 순간을 연속 촬영했다. 김지연은 결승전에서 국가대표팀 동료인 이라진에게 져 은메달을 확득했다. [인천=김경빈 기자]
구본길(左), 전희숙(右)

아시아에 적수가 없다. 대한민국 펜싱 대표팀이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초반 거침없는 찌르기로 메달 잔치를 벌였다. 이틀동안 4개 종목에서 금메달 4·은3·동1개를 따냈다.

 구본길(25·국민체육진흥공단)은 21일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 결승에서 김정환(31·국민체육진흥공단)을 15-13으로 꺾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

여자 플뢰레에서는 전희숙(30·서울시청)이 금메달, 남현희(33·성남시청)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전날 열린 여자 사브르에서는 이라진(24·인천중구청)이 금메달, 김지연(26·익산시청)이 은메달을 나눠가졌다. 남자 에페에서는 정진선(30·화성시청)과 박경두(30·해남군청)가 각각 금·은메달을 따냈다. 펜싱 대표팀은 이 기세를 몰아 2010년 광저우 대회(금7·은2·동5)를 넘어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겠다는 각오다. 펜싱 금메달은 총 12개다.

 한국 펜싱은 2012 런던 올림픽부터 저력을 발휘했다. 김지연의 깜짝 금메달에 이어 남자 사브르 단체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총 6개(금2·은1·동3)의 메달을 따내며 펜싱 본고장 유럽을 깜짝 놀라게 했다.

 대한민국 펜싱이 승승장구한 비결은 스피드를 활용한 ‘발 펜싱’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유럽 선수에 비해 체격이 작다. 특히 팔이 짧기 때문에 대신 발을 더 많이 움직이도록 했다. 1분당 스텝 수를 유럽 선수들의 2배 수준인 최대 80회로 늘렸다. 빠른 스텝으로 1초 동안 무려 5m가량을 이동했다. 빠른 발을 갖게 되면서 디스땅스(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했다. 상대방을 안심시킨 뒤 재빨리 뒤로 빠져 반격하는 ‘지략 펜싱’도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한국의 ‘발 펜싱’전략은 1년 만에 간파당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는 남자 사브르 단체와 여자부 김지연이 동메달을 따내는 데 그쳤다. 종합우승은 러시아(금3·은5·동3)가 차지했다. 대한펜싱협회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약점이었던 손을 단련하기로 했다. 대표팀 심재성 감독은 “발 펜싱을 하면서 다리는 무척 빨라졌지만 상대적으로 손이 더 느려졌던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칼 놀림이 중요하니 손도 발처럼 빠른 속도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탄생한 전략이 ‘스텝 훈련’이다. 펜싱 스텝을 밟으면서 손을 허리까지 올려서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훈련이다.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효과는 만점이지만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선수들이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게 문제였다.

한국스포츠개발원(KISS) 정진욱 박사는 선수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이들이 좋아하는 최신 음악을 준비했다. 씨스타의 ‘터치 마이 바디’, 에프엑스의 ‘레드 라이트’ 등을 각각 2분30초로 편집해 스텝 훈련 때 틀었다. “힘들다”고 아우성치던 선수들은 신나는 노래가 나오자 몸놀림이 경쾌해졌다. 이라진은 “스텝 훈련이 제일 힘들었지만 신나는 음악 덕분에 즐겁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강도 체력 훈련도 한 몫 했다. 펜싱협회 오완근 사무국장은 “지난해 세계선수권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지난 겨울 태백과 제주도에서 동계훈련을 했는데 체력 증진은 물론 정신 무장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정진선은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서 밤 9시까지 휴대전화도 만지지 못할 정도로 온종일 훈련만 했다”고 밝혔다.

고양=박소영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