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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의 걸림돌, 비관세 규제 장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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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2년 반이다. 17대 국회(2004~2008년)에서 국회 FTA포럼 대표의원으로, 그리고 한·미의원외교협의회 등을 통해 ‘뜨겁게’ 다루던 기억이 새롭다. 2007년 서울회의 때는 미국 의회 최초로 양국 대표단이 금강산 방문까지 했다.

 그 당시 한·미 FTA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 이유는 간단했다. 무역규모 세계 8위의 우리 내수시장은 인구로는 0.7%, 국토면적으로는 109위다. 미국은 세계 GDP의 22.5%인 16조2000억 달러의 최대 시장이다. 당시 대미 교역규모는 하락세였다. 우리로서는 경제 영토를 늘리는 것이 살길이고,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외세에 밀려 시장을 내주는 것보다는 능동적으로 세계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보았다.

 더 두고 볼 일이지만, 한·미 FTA가 양국 간 교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새롭게 대두되는 과제는 무엇인지 궁금한 게 많다. 한·미 FTA 발효 2년차의 대미 수출은 623억 달러, 대미 수입은 417억 달러였다. 서비스 교역에서는 미국이 100억 달러를 더 벌었다.

당초 미국의 값싼 농산물이 밀려들어올 것이란 우려도 컸다. 2013년 통계를 보면 농수산물의 대미 수출은 6억3000만 달러, 대미 수입은 60억 달러였다. 와인(8.4배)과 체리(4.6배) 수입이 급증했다. 그러나 FTA 발효 이전과 비교하면 일단 대미 수출은 늘고 수입은 줄어든 모양새다.

 한·미 FTA 활용도에서는 산업 전반의 평균치가 76%인 데 비해 농수산물은 51%에 그쳤다. 이유가 뭘까. 원산지 규정과 FDA의 식품 수입규제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탓이다. 2012년 식품안전현대화법(Food Safety Modernization Act) 시행으로 더 심해졌다. 엄격한 위해요소중점관리(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 기준, 라벨링, 각 연방기관과 주 정부마다 상충되는 법률 등 겹겹이 관문이다. 특히 중소업체는 대응하기가 어렵다. 통관에서 발이 묶인 사례는 2010년 196건에서 2011년 403건, 2012년 450건으로 늘어났다.

 몇몇 사례를 보자. 우선 멸치다. 멸치는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빼는 등 HACCP 기준에 맞게 위생처리돼야 한다. 2011년 이전에는 수산물 크기 5인치(12.7cm) 이상에만 적용됐으나 범위가 확대되면서 멸치 위장반입으로 인한 기소사태까지 빚어졌다.

조기 사례도 있다. 6개 컨테이너 물량이 반년 동안 묶였다 끝내 폐기처분됐다. 배에서 잡은 상태 그대로 냉동시켜야 하는데, 소금절임을 한 뒤 냉동시켰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도 걸렸다. 주원료인 우유가 한국산이나 미국산이라야 하는데, 호주산이었기 때문이다. 역으로 미국산 오렌지 주스도 한국으로 들어오다가 오렌지의 미국 원산지 증빙서류 미비로 인해 관세 추징 위기에 처했고, 정상회담의 의제까지 됐었다.

 21세기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생산과 공급의 체인, 이른바 글로벌 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이 특징이다. 예컨대 프랑스·독일·영국·스페인 4개국 합작의 에어버스(Airbus) 컨소시엄은 27개국 1500개 공급원의 참여로 비행기를 제작한다. 심지어 장난감 바비(Barbie) 인형도 디자인과 주형은 미국, 합성수지는 대만, 모발은 일본, 옷은 중국, 조립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6개국의 합작품이다. 과연 어디가 원산지(country of origin)인가. 세계무역기구(WTO)는 드디어 ‘Made in the World’란 용어까지 창안했다. 이처럼 다국적화가 대세인 가운데 각각 서로 다른 규제와 기준의 복잡한 체인이 작동하고 있으니, 도처에서 불협화음이 빚어지는 것이다.

 한·미 FTA 발효로 수혜품목 교역량이 늘고,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협상 초부터 쟁점이었던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이슈는 아직도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의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농수산식품 교역에서도 세관의 원산지 검증 강화와 FDA의 안전규제 등이 걸림돌이다.

앞으로 FDA가 추진하는 규제 프로그램(Foreign Supplier Verification Program)이 도입되면 더 까다로워질 것이다. 명실상부한 통상협력을 위해서는 양국 정부가 교역 촉진과 안전규제 사이의 부조화를 조화롭게 푸는 노력이 절실하다. 당국 간 협력으로 안전기준 관련 MOU 체결 등 상호인증 방안을 모색해 비관세 장벽을 낮출 수 있을 때 한·미 FTA가 그 진가를 십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