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폐기물 저장능력 '고무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정부가 방사성 폐기물 관리와 관련된 통계나 시설 건설 계획을 수시로 바꿔 원자력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폐기물 관리용량이 충분하다고 했으나 올 들어 갑자기 관리시설을 새로 지어야 한다며 대국민 홍보에 나선 것이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최근 방사성 폐기물 임시 저장시설이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포화될 것이라고 일간지에 대대적인 광고를 하며 영구처분시설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1998년 원자력발전 백서에서 "2006년까지 원전 부지 내 저장이 가능하며 2016년까지도 저장할 수 있도록 예비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붕산수가 가득찬 수조에 사용 후 핵 연료를 훨씬 촘촘하게 저장하도록 시설을 개선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에 앞서 94년엔 국내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의 사용 후 핵 연료 임시 저장시설이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96~2000년 포화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가 밝힌 방사성 폐기물 저장능력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바람에 관리시설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에 따라 반핵.환경단체들은 정부가 영구처분장의 무리한 건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장 능력을 엉터리로 발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관성 없는 통계는 작업복.공구 등을 드럼통에 담아두는 중.저준위 고체 방사성 폐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94년 정부는 관리용량이 2001년까지 포화될 것이라고 했으나 98년에는 2010년까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다 2001년에는 2008~2014년 원전별로 단계적 포화가 예상된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초고압 압축 등 새로운 폐기물 관리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저장능력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도 "중.저준위 폐기물의 원전 부지 내 저장이 평균적으로 2020년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나 한국수력원자력은 지자체의 반대로 부지 확보나 건설에 어려움을 겪을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수원 대외협력실 신보균 과장은 "새 기술이 개발돼 저장능력이 늘었으나 지자체 등의 반대로 시설을 제때 못 짓고 있어 빨리 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영광 원전의 경우 지자체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 제2저장고를 짓는 데 4년6개월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핵국민행동 석광훈 정책실장은 "지자체가 반대한다고 영구처분장을 서둘러 건설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10년의 여유가 있으므로 사전 조사.검토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너무 서두르다가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 후 활성단층이 발견돼 뒤늦게 취소했던 95년 굴업도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2월 고창.영광.영덕.울진 등 네곳을 영구처분시설 후보지로 선정했다.

또 최근엔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10개 부처 장관이 시설유치 지역에 대해 각종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의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 반론

4월 24일자 8면 '방사성 폐기물 저장 능력 고무줄'기사와 관련, 산업자원부(장관 윤진식)는 "정부는 중.저준위 폐기물의 경우 2008년부터 포화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사용후연료는 2016년까지 저장할 수 있도록 예비계획을 수립하고 있고, 폐기물의 종류와 기간 구분 없이 정부가 방사성 폐기물 관리 관련 통계를 수시로 바꾼 것은 아니다"라고 밝혀왔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