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휴먼 북스] 책과 연애하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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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불평하지 않고 늘 같은 얼굴로 우릴 대하는 그에게 몽테뉴처럼
책 여백에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라

인생에 중요한 세 가지 교제가 있다. 첫째는 "교양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과의 교제"이다. 그것은 서로 방문과 환대 그리고 대화와 토론이 있는 향연을 통한 관계 맺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둘째는 "교양 있고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다정한 교제"이다. 그것은 절대 상호성을 바탕으로 몸과 마음을 교환하는 것이고 육체적 감각의 축제이자 대화의 즐거움을 나누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는 제3의 교제가 있다. 그것은 변덕부리는 일 없이 "불평을 늘어놓지도 않고 늘 같은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 주는" 책과의 사귐이다.

미셸 드 몽테뉴는 '인생 에세이'(동서문화사)에서 세 가지 교제에 대해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책과의 교제'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긴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어떤 실천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독서에 동반하는 글쓰기의 욕구다. 몽테뉴 만년의 삶은 독서와 사유 그리고 글쓰기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우리같은 일상의 독서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몽테뉴의 사유와 명상은 책읽기에서 시작되었다. 종교전쟁의 시기를 살았던 몽테뉴는, 혼란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만남, 즉 자아 성찰을 시도한다. 성찰을 위한 첫발은 구체적으로 인류의 정신적 유산과의 만남이었다. 즉 고전의 독서였다. 그는 말한다. "책은 언제나 내가 가는 곳에 있으며 어디서나 나를 도와준다." 그리고 "나의 심령은 거기서 훈련받는다."

중요한 건 훈련받은 심령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몽테뉴는 책을 통해 사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사색을 어떤 형태로든 기록했다. 그는 독서하면서 책의 여백 혹은 뒷면에 자신의 느낌과 생각들을 깨알같이 적었다. 그의 대작은 이 작은 기록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독서로 훈련받은 그의 심령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와 글쓰기는 그에 있어 별개의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책과 교제함으로써 그는 자기 책의 창조자가 된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몽테뉴의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실용적 성찰의 실마리다. 독서는 글쓰기의 의욕을 자극하고, 글쓰기는 독서를 더욱 증가시킨다. 쓰지 않으면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다. 또한 글쓰기는 타인에게 자기를 노출하는 것이므로 노출의 고통을 수반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아 성찰의 치열함을 겪게 된다. 독서가 자아 성숙의 길이라고 함은 그것이 글쓰기의 실험에 이를 때 더욱 그 의미를 완성한다. 이는 우리 일상의 독서가들도 기꺼이 시도해 볼만한 실험인 것이다.

우리는 독서함으로써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또한 책에서 얻은 삶의 의미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의욕을 갖는다. 이것이 글쓰기의 시발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자아를 실험하고 자아를 표현한다. 이 과정에는 항상 다시 찾아가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 책은 몽테뉴가 그러했듯이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친구이다. 이 부담 없는 귀환의 길이 '책과 맺은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하며, 이 때의 책은 인성을 가진 '휴먼 북'이 된다.(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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