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m를 평균 18초2로 계속 달린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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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뉴욕마라톤대회에서 2시간8분13초의 경이적인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여 일약 국제스포츠계의 VIP로 등장한 「알베르토·살라자르」는 마라토너에 관한 한국인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좋은 가문에서 자라나 대학에선 경제학을 공부한 인탤리다.

<명문가 출신의 인텔리>
스페인과 프랑스의 피가 섞인 「살라자르」가문은 쿠바로 이주하기 전 파리에 살때인 1802년 4대 조부인 건축가 「피델·바우뒤」가 경제계의 명문 「뒤퐁」가에 돈을 융자해 주었을 정도로 부호였다.
「살라자르」의 아버지「호세·살라자르」는 당초 「피델·카스트로」의 열렬한 추종자로 쿠바혁명에 일역을 담당했으나 「카스트로」가 공산주의로 급선회하자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매사추세츠주 웨일랜드시에 있는 「살라자르」의 집에는 지금도 별 모양이 새겨진 방패장식의 중세 기사 투구가 가문의 심벌마크로 걸려있다. 그리고 가훈(가훈)이 『희망을 잃지 맡라』 다.
검은 고수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살라자르」는 오는 12월21일 결혼할 약혼녀 「모튼」 양에게 『비범한 생을 추구한다』라는 자신의 좌우명을 가장 자랑한다.
이와 같은 생활환경은 한국의 마라토너들이 생계에 급급하여 눈앞의 각종 대회에서 우선 입상이나 하고보자는 식의 맹목적인 사고방식과는 체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작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각계의 스카우트 유혹을 받았으나 「살라자르」는 「대기록」 의 수립이라는 필생의 목적을 위해 취직을 미루기도 했다.

<좌우명은 「비범한 생」>
결국 좋은 혈통, 비범한 재질을 그대로 살려 기록에의 도전이라는 순수한 목표를 위해 집요하게 매진한 의지와 신념이 개가를 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셈이다. 「살라자르」는 보폭이 비교적 짧고 다리를 질질 끄는 것과 같은 주법을 사용, 전문가들로부터 결점으로 지적 받고 있다. 그러나 이미 몸에 배어버린 이 습성을 구태여 고치려 하지 않았다. 『스타일은 하나의 개성이다. 기록향상은 강인한 훈련이 좌우한다』 라는 것이 「살라자르」의 고집이었다.
「살라자르」는 지난 6월 이후 매주1백28마일(약2백6km) 을 뛰는 용의주도한 과학적 훈련을 거듭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8∼10마일씩 하루에 통산 16∼21마일을 뛰었다. 그리고 일요일엔 20마일(약32·2km)을 1시간57분 안팎에 주파하는 연습을 했다. 이러한 훈련량은 사실 한국선수들에 비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살라자르」는 15km 안팎의 짧은 거리를 아스팔트·잔디·진흙땅을 옮겨가며 워밍업·스피드업, 그리고 휴식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지속적인 반복훈련을 거듭함으로써 최고의 스피드를 능히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했다.
지난 69년 호주의 「데례쿠클레이턴」이 2시간8분33초6을 수립했을땐 다소의 논란이 있었다. 벨기에 앤트워프시의 코스가 42·195km에 미달했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결국 공인은 받았지만 「개운한 세계기록」은 아니었다.

<30∼50년대 한국인 군림>
「살라자르」의 쾌거는 세계마라톤 역사의 변천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2시간29분19초)으로부터 l947년 보스턴마라톤의 서윤복(2시간25분39초)에 이르기까지 세계마라톤은 지구력이 강한 한국인에 의해 석권됐다.
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51년 광주의 제32회전국체전때 최윤칠이 2시간25분15초로 주파, 서윤복의 4년전 세계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손기정의 경우 1934년에 서울과 동경에서 각각 2시간25분14초, 2시간26분19초를 기록한 적이 있으나 일인들의 농간으로 세계 공인을 받지 못했다.
결국 한국인은 30년대부터 50년대초까지 20여년동안 세계마라톤의 정상에 군림해 있었던 것이다.
인간기관차 「자트펙」(체코)의 출현으로 50년대엔 유럽세가 강세를 보인 후 60년대는 아프리카 고산족의 시대로 블랙파워가 맹위를 떨쳤다. 「비킬라·아베베」 (이디오피아) 의 로마·동경올림픽 2연패 후 멕시코올림픽에선 제2의 「아베베」 「마모·월데」가 우승, 마라톤이 산야를 뛰면서 자라나는 고산 흑인족의 전유물이 되리라는 성급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7O년대에 들자 영국의 「론·힐」 「톰슨」, 미국의 「프랭쿠쇼터」 「빌·로저즈」, 일본의 종무·종맹·뇌고이언·이등국광등 2시간9분대의 준족들이 속출, 마라톤은 브랙파워가 아닌 선진국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하고 있으며 「살라자르」 의 최고기록 수립으로 이를 재확인 한 것이다.

<스포츠과학 중요성 보증>
결국 스포츠과학의 발전과 이의 실용화가 추구되지 않아서는 경기력의 향상은 이뤄지기 힘들다는 하나의 실증이 된다.
동구국중 유일하게 세계정상대열에 오른 동독의 「치에르핀스키」(몬트리올과 모스크바올림픽 우승)도 동독의 국가적 사업인 극성스런 「선수양성」 에 따른 결실이다.
스피드를 생명으로 하는 현대마라톤은 레이스의 양상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으며 최후의 5백m 내지 1km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대미(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상례다.
「살라자르」의 스피드는 1백m를 평균 18초2에 달린 셈이다. 이 속도를 42·195km를 달리면서 2시간8분13초 동안 유지했으니 범인(범인)으로선 놀라운 일일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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