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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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88년 세계 올림픽 유치』라는 빅뉴스는 무척 우리 국민들을 흥분케 만들고 있다.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데서 더욱 기쁘고, 이제는 우리나라도 올림픽을 개최할 만큼 성장했다고 하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데서 오는 기쁨과 흥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때에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세』 라고 말한 정신의학자 「칼·메닝거」의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즉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림픽 개최에 따른 우리의 정신적 자세라는 것이다. 바꾸어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얼마나 많은 재산과 지식과 명예를 가졌느냐 하는사실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 주위를 살펴 보면 잘 사는 사람은 많아도 바로 사는 사람은 극히 적은 수라는 것을 알게된다. 기독교인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잘 믿는 것보다 바로 믿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나는 삶의 바른 자세가 빚진 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울」 이다. 「바울」의 선교를 통한 세계적인 공헌은 막대하다고 하겠다. 그가 바로 빚진 자의 자세로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고 선언한다.
본래 빚은 갚아야 할 성질의 것이요, 갚지 못하면 마음이 무겁고 불안 속에 살게 되고, 빚을 갚을 때는 마음이 가벼워지고 시원해진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모른다. 우선 부모님께 진 빚을 생각해보면 평생을 갚아도 못 갚겠다. 그것은 내가 자식을 낳아 키워보면서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부모님이 없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고, 오늘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님께 빚 갚는 계명을 사람에 대한 계명 중에 첫째에 놓고 있다. 효도가 조금이라도 빚을 갚는 것이라고 알고 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때 프린트 교재에서 읽은 이야기의 줄거리가 기억난다. 제목이 『귀신의 눈물』 이다.어떤 어머니가 아들을 업고 트렁크에 노자를 가득 준비해 가지고 멀고 먼 여행길에 오른다.그런데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서 아들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때 어머니가 사정하여 겨우 아들 대신에 트렁크를 주고 모면한다. 얼마후에 다시 귀신이 나타나 아들을 또 요구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 대신에 시계를 풀어 주어 위기를 면한다.
얼마 후에 또 다시 귀신이 나타나 아들을 내놓으라고 한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럼 아들을 줄테니 입을 크게 벌리라고 어머니가 청한다. 입을 크게 벌린 귀신의 입속으로 어머니는 아들을 업은채 몸을 던졌다. 귀신은 목에 걸려 애쓰다가 겨우 모자를 토해내고 혼이 나서 눈물 흘리고 도망갔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자녀를 위한 부모님들의 재산·시간, 그리고 헌신하는 사랑에는 귀신도 울고 간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부모님들에게 진 빚을 효도로 꼭 갚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회에 대해서 진 빚이 얼마나 많은가?
또 우리는 나라에도 빚을 많이 지고 있다. 나라 없었던 과거의 경험은 쓰라림의 역사였다.나라에서 세운 학교에서 공부하여 성공한다. 나라에서 우리의 생명과 살림을 지켜주고, 세계로 도약하는 발판이 돼 준다.
그보다 더 큰 빚은 하나님께 진 것이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멸망이라는 운명을 진 인간에게 자기 아들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시어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다. 이 사실을 믿는것이 기독교인들이다. 이 엄첨난 빚을 「믿음」혹은 「충성」 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빚을 갚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다. 마음은 가벼워지고, 기뻐지고, 재세할 것은 없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자세가 이래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의 바른 자세다.
인간이 법을 채점하고 제도를 만들어 내고 온갖 문명의 이기들을 발명해 내고 있으나 그것들은 스스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인간이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에 따라서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인간자체의 변화, 혹은 정신이 이루어 지지 않는 한 좋은 사회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 하리라 여겨진다. 우리는 「디켄스」의 『크리스머스캐롤』에서 「스크루지」영감의 변화를 본다.
그는 그의 친구 「마레」 노인의 깨우침 끝에 나타난 과거의 영에게 인도되어 자기의 지난 날에 즐거웠던 소년시대를 본다. 그리고 현재의 영의 지도로 현재의 냉혹하고 처량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잠들었던 양심이 깨어난다. 곧 이어서 나타난 미래의 영에게 이끌려 자기 미래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몸부림 친다. 그는 잠에서 깨어난 후 소생이나 한 듯이 기뻐하며 창고를 열고 돈을 쓸줄을 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 성탄 축하 예배에 참석한다.
이런 「스크루지」영감의 변화로 직장이 밝아지고, 이웃과 사회는 명랑해진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역설한다. 그런데 그 근원을 하나님 사랑에 두어야 한다고 한다. (마태22‥37∼40)
◇약력 ▲황해도 은률출생 ▲동아대학교 졸업 ▲장로회 신학대학 졸업 ▲현광성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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