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국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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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은행의 81년도 「세계개발보고」를 보면 현재 세계의 절대빈곤인구가 7억5천만이고 금세기 말에는 8억5천만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인구 44억의 6분의1이 굶주리고 있는 한 지구상에 영일이 있을 수 없다. 방대한 빈곤층은 동서관계에서는 공산제국주의의 영향력 확장의 무대를 제공하고, 남북관계에서는 빈부간의 계속된 긴장의 원인이 되고있다.
문제를 한층 까다롭게 만들고 있는 것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식량을 비롯한 물자의 절대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물자)의 편재 때문에 기아선상의 인구가 그렇게도 많다는 사실이다.
22, 23일 이틀동안 멕시코 남쪽 유카탄반도의 휴양도시 칸쿤에서 8개국의 「가진 나라」, 14개국의 「못 가진 나라」수뇌들이 사상 유례없는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것도 선후진간·남북간의 엄청난 빈부의 격차를 이상 더 방치할 수 없다는 상황판단을 반영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빌리·브란트」 전 서독수상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개발문제 독립위원회」가 80년 2월 유엔사무총장에게 「브란트 보고서」를 제출한데서 발단이 되었다. 「브란트 보고서」는 남북문제가 심각함을 역설하고 남의 가난한 나라들에 대규모 자금이전을 실시하고, 에너지·식량에 관한 세계적인 전략과 국제경제의 개혁을 제안했다.
그보다 앞선 79년 아바나 비동맹 수뇌회의와 유엔 통상총회는 ⓛ에너지 ②통화·금융 ③개발 ④무역 ⑤1차 산품의 다섯개 분야에 걸친 포괄적인 남북교섭(Global Negotiation=GN)을 유엔에서 열자는 결의를 채택한 바 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쟁점(최대 의제)이 되는 것이 바로 포괄적인 남북교섭(GN)인 것이다.
특히 「남」의 참가자들은 칸쿤회의를 유엔에서의 GN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북」에서는 칸쿤회의와 GN을 바로 연결시키는데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남」이 유엔에서의 GN을 주장하는 것은 출자비례에 따라 「북」이 주도권을 독점하는 지금의 세계경제질서를 유엔의 일국일표 방식으로 뜯어고쳐 남북경제관계를 저개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자는 「이유 있는 동기」에서다.
그러나 칸쿤회의는 합의나 결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논을 위한 것이라는 사전양해 비슷한게 성립되어 있어 구체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GNP기준으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소련이 주최국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불참했고 「남」은 산유 부국과 비산유 빈국으로 내부분열을 일으켜 목소리를 통일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회의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GN에 관한 합의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은 미국의 「레이건」행정부가 「카터」행정부의 찬성입장을 백80도 뒤집어 다른 선진 7개국의 태도까지 흔들리게 만든 사정이다.
「레이건」행정부의 이런 비협조적인 자세는 「남」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점에 관해서 우리의 입장이 적잖게 미묘함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칸쿤회의 참가국은 아니지만 「남」의 입장에서 GN을 강력히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레이건」행정부가 GN에 반대하는 것은 세계은행 같은 것을 통한 다국간 원조를 우방에 대한 2국간 원조로, 민생안정을 위한 원조를 군사중심의 안보원조로 전환하기 위한 것이라는 배경을 알고 보면 우리의 태도는 신중한 것이어야 한다.
다만 우리가 미국에 지적하고 싶은 것은 GN이 미국의 원조정책 전환과 반드시 상충되지 않는다는 점과 길게 보면 동서 냉전적 발상이 남북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련의 불참 때문에라도 미국은 최대의 성의를 가지고 「북」의 참가국들을 리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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