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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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의 중동 정책은 77년 「사다트」가 이스라엘을 방문한 이래「사다트」대통령을 축으로 회전해왔다.
미국은 그의 죽음이 이 회전축의 탈락으로 퇴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막후 교섭을 장례식 직후부터 전개하기 시작했다.
「무바라크」부통령이 거듭해서 『「사다트」의 정책은 돌이킬 수 없다. 우리는 계속 캠프데이비드 합의를 성공시킬 것이다』라고 언명하고 있는 것도 이들 서방대표단들과 함께 「사다트」의 사망이 그런 한시대의 종막이 아니라 「사다트」시대의 계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정책의 추진력을 한 손에 독점하고 있던 인물이 사라질 때 그 시대는 종언이 오고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 변화가 어느 만큼의 시간 간격을 두고 올지, 그 변화의 폭이 어느 정도일 것인지가 현 이집트 지도자나 미국과 서방세력의 힘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변수일 것 같다.
현재 이집트에서 드러나 보이는 변수의 잠재성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무바라크」를 중심으로 한 현정권이 국내 「사다트」반대파의 위협을 무리 없이 극복하고 정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무바라크」가 공언한대로「사다트」의 중동정책을 원형대로 고수할 것이냐 아니면 어떤 수정이 가해질 것이냐는 점이다.
「사다트」의 암살이 치밀한 계획의 결과였음이 확실한 이상 그 배후세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암살 후 이사건과 연관된 듯한 소요가 한 도시에서 그친 걸로 봐서 이 사건 자체가「무바라크」정권에 위협이 될 가능성은 당장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봐서「사다트」가 지난 9월초에 투옥한 1천 5백명의 인사들을 대변하는 재야세력이 어떤 형태로든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 변수의 경우 「무바라크」는 『정책불변』을 선언했지만 「사다트」도 「낫세르」 가 사망했을 때 『「낫세르」의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거듭 선언했던 것을 기억하면 지금의 공식선언을 너무 과대평가 할 것은 못된다.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던 순간에 정부군은 카이로 북쪽 40㎞에 위치한「사다트」의 고향 미트 아불 콤마을로 통하는 모든 길을 차단했다.
외부에서 이 마을에 대해 피해가 있을 것을 우려해서 취한 것으로 보이는 이 조치는 그런 위협이 실제로 있었든 없었든 간에 현 집권자가「사다트」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에 자신감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사다트」의 장례식에 일반 시민들을 접근조차 시키지 않은 것은 외국귀빈들의 경호조치의 일환이긴 하지만 역시「사다트」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또 「무바라크」는 공군사령관 출신으로 군 전체에 대한 통솔력은 아직 미지수다. 따라서 그가 국내정치에서 「사다트」의 강경책을 계속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또 그가 「낫세르」나 「사다트」같은 거물들의 그늘에서 빠져나와 자기 스스로의 지도자 상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사다트」의 전철을 밟고있는 것이 개인적으로 유리할 게 없다.
범아랍주의·친소·사회주의 등의 용어로 상징되는「낫세르」와, 이집트 독자노선·친미·자유경제 등으로 대변되는 「사다트」 -.
서로 다른 두 모델을 놓고 「무바라크」는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또 「무바라크」라는 신인을 둘러싼 여러 갈래의 압력은 어느 쪽으로 그를 밀고 갈 것인가? 이런 의문들은 지금 워싱턴과 모스크바로 하여금 다같이 밤잠을 설치게 하는 질문이며 중동의 앞날과도 직결된 중요한 미지수다.
【카이로=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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