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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으로 가는 길|성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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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을 밝혀주는 성화는 스포츠를 통하여 친선과 우의를 다지고 나아가 인류평화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올림픽의 상징이다.
『높거나 낮거나, 덥거나 춥거나, 동쪽이거나 서쪽이거나, 도시가 있는 곳이면 세계 어느 곳에나 열린다』는 올림픽광장에 성화는 꺼지지 않고 타올랐다. 그래서 성화는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중의 하나로 성스럽게 진행된다.

<나치 선전 위한 묘안으로>
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최종주자가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입장, 성화대에 점화되면 대회의 흥분은 절정에 다다르고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하늘을 수놓게 된다. 성화의 불빛아래 세계의 젊은이들은 「보다 빨리, 보다 높이, 보다 멀리」 달리게 되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성화가 첫선을 보인 것은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대회부터. 당시 암스테르담 스포츠센터의 마라톤 탑에 확성기를 달아놓고 탑 위에 커다란 돌접시 같은 것을 올려놓고 대회동안에 불을 붙여 놓았다. 이것이 오늘날 성화의 시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올림픽의 발상지인 올림피아에서 점화해온 것은 36년 제11회 베를린대회부터였다.
대회개최 3년전에 전독일을 장악한 「히틀러」는 올림픽을 이용하여 전세계에 나치스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호화올림픽을 마련했고 대회운영도 색다른 것만 골라서 했다. 3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독일대포 「카를·팀」박사의 창안으로 성화릴레이 운반을 결정했지만 실은 나치스의 선전을 위한 묘안이었다.

<비행기로 봉송하기도>
고대와 현대올림픽 정신을 연결하는 의도에서 마련된 성화릴레이는 7월19일 아테네에서 불가리아 유고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를 거쳐 독일에 이르는 7개국을 거쳤다. 태양열로 채화된 성화는 베를린까지 3천75㎞의 코스를 거치면서 1전5백여명의 주자들에 의해 운반했다. 성화주자들은 유고의 걺은 국왕을 비롯한 정치가·교육자·스포츠맨 등 각계각층에서 뽑힌 자들이었다.
52년 제15회 헬싱키대회 때는 성화가 비행기로 운반됐고 3개 대회에서 금9, 은3개를 획득한 『날으는 핀란드인』 「누루에」가 성화최종주자로 등장했다.
64년 제18회 때는 그리스에서 2만6천㎞를 10만6백96명의 주자들에 의해 동경에 봉송되기도 했다.
76년 몬트리올에는 남녀2명이 나란히 성화를 잡고 점화, 이채를 띠었다. 종전까지는 한선수가 성화를 점화했으나 이 관례를 깨고 두선수가 성화점화를 했으며 성화대도 메인스타디움 한복판에 마련한 것도 특이했다.
성화는 만일의 사고에 대비, 2개를 운반하며 48년 제14회 런던대회 때는 그리스에서 게릴라의 습격을 받아 꺼졌고 런던에 도착한 다음날 원인불명으로 또 한번 꺼져 소동을 빚기도 했다.

<사고에 대비, 2개운반>
동계올림픽의 경우 성화는 52년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열린 제6회부터. 오슬로북방 약2백㎞ 떨어진 몰게탈이란 산촌에 있는 「느르드하임」소옥에서 점화, 오슬로에 운반했다. 「느르드하임」은 1640년께 근대적인 스키 점프기슬을 개척한 노르웨이사람으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작은 짐을 지어놓고 그 집 난로에서 점화하여 동계올림픽의 성화로 사용하게됐다.
이 같은 성화행사는 우리 나라 전국체전에서도 거행되고 있다. 전국체전의 성화행사는 55년 제36회대회부터 시작. 단군성조에 관한 전설이 많은 강화도 마니산정에 있는 참성단에서 7선녀의 군무 속에 채화되고있다. <조이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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