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물디자이너 박현숙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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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옷이 날개」라고들 한다. 한 사람의 속멋을 알러주는 지표를 인격이라 한다면, 인격을 외양적으로 가능케하는 지표는 옷이라 풀이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텍스타일 디자이너-. 약간은 생소하게 들리는 이 말은 바로 「인간날개」의 바탕을 다양성있게 꾸며내는 일꾼들을 칭한다.
오색의 실을 올올이 가려 뽑아 날줄과 씨줄을 가르며 자아낸 갖가지 형태의 옷감들-. 이것이 바로 그들이 흘린 땀의 결정체다.
국내 직물업계에 텍스타일 디자인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부터. 제일모직 주식회사내에 직물디자인과가 설치된 것이 그 시초다.
아직 국내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은 초창기인 셈. 현재 직물업체 중 직물디자인과가 설치된 곳은 두군데에 지나지 않아 이 분야의 종사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박현숙양(26·제일모직 직물디자인과)은 얼마되지 않은 텍스타일 디자이너 중의 한 사람이다.
『제가 디자인한 원단으로 옷을 마추어 입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막 뛰어요.
「저것 내거다」하고 소리치고 싶어집니다.』 박양이 전하는 보람의 한순간이다.
그가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출발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3개월전인 78년7월.
홍익전문학교에서 그래픽을 전공했던 그는 졸업 후 주문생산을 하는 군소직물업체에서 1년반동안 날염을 맡았던 것을 빼놓고는 줄곧 이일에 종사해온 베테랑급 여성전문인이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는 고급양장지. 전체적인 제품기획에 따라 바지·원피스 등 용도에 따른 수량이 결정되면 디자인에 들어간다.
섬유디자인→색상디자인→디자인제품 생산주문→시직물점검의 일련의 과정이 그가 해내야할 일들이다.
『실만 가지고 지정해 내보낸 것이 천으로 짜여져 올라온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무척 떨리면서도 신기한 느낌이 들더군요. 지금도 일단 내보낸 디자인이 시직물로 울라오면 몹시 긴장이 됩니다.
그의 디자인의 보고는 시장. 따라서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혼자라도 개의치 않고 시장안을 누비고 다닌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피부로 색감을 느낄 수가 있어 소비자의 성향을 유추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양이 한철동안 제작하는 양장지만도 약60여종.
여기에 색상변화(무지의 경우=품종당 30여종)까지 합치면 엄청난 숫자가 된다.
『남들보다 1년을 앞서가야 한다는게 가장 어려운 점이에요. 이 철에 맞는 내년도의 느낌을 알아내야만 성공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에게는 과거의 우리시장, 외국시장 등이 빠뜨릴 수 없는 자료가 된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불만은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 디자이너의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미선진국과는 달리 아직 우리 나라는 기업체라는 조직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모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보일」이라는 하복양장지패턴으로 디자인부문 개발상을 수상한바있는 그는 앞으로 한국의 토속적인 색상을 발견해내 현대에 맞게 되살리는 것이 꿈이다.
5남3녀의 막내로 부친과 함께 살고있는 박양은 『2년후에나 결혼할 생각』이라며 수줍게 웃는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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