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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보 바지와 자루옷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6·25의 참화에 휩쓸렸던 1950년대가 끝날 무렵엔 양장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 양장인구도 눈에 띄게 늘어갔다.
지금처럼 노소에 관계없이 평상복으로는 으레 양장을 택하는 정도는 물론 아니었지만 우선 양장이 「일하기 편한 옷」이란 이해가 폭넓게 생겨났다.
예나 이제나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이야 누구나 인정하는 바지만 점차 생활의 합리화가 강조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넓은 소매, 졸라맨 가슴, 질질 끌리는 치마에다 발을 옥죄는 버선이 평상복 활동복 작업복으로는 적합치 못하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비단 사회에 진출한 직장여성뿐 아니라 집에서 살림만하는 가정주부들도 차츰 긴치마가 가사노동을 비능률적으로 만드는 원인이라는 깨달음이 생겨나서 양장쪽에 새삼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런 추세를 따라 20∼30년씩 집안에서 살림만 하던 40, 50대 중년부인들도 더운 여름 한철은 거추장스런 치마 저고리를 간편한 원피스나 블라우스 스커트 차림으로 바꾸는 경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때맞춰 유행도 타이트 스커트에서 폭넓은 플레어스커트나 주름이 풍성한 플리츠 스커트 혹은 개더 스커트 쪽으로 옮겨감으로써 넓은 한복 치마에 익숙한 한국여성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플레어 스커트는 해가 갈수록 점점 넓은 것이 유행이어서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의 교복에서까지 180도니, 360도니 하고 스커트의 폭을 경쟁하는 정도였다.
네크홀(목둘레)도 대담스럽게 파고 소매를 없애 팔 전부를 드러내는 슬리브리스 모드가 출현한 것도 이 무렵.
겹겹이 감싸는 한복 속에 은은히 감추어진 아름다움에 익숙하던 일반인들의 눈에 이러한 갑작스런 노출 모드는 피난시절의 낙하산지블라우스때 못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거기에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번지기 시작한 헵번 스타일이 차츰 세력을 얻기 시작한 것 역시 1950년대가 끝나던 무렵이다.
5천년에 걸쳐 긴 머리를 고수해온 우리 민족의 심미안(심미안)에 비록 개화기 신여성들의 단발스타일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머리모양만으로는 분간이 어려운 헵번형 헤어스타일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신문·잡지의 칼럼에는 이 헵번형 머리를 「꽁지 빠진 할미새 같다」는 등 비꼬는 글들이 심심찮게 실리곤 했다.
이처럼 헵번 스타일은 사회 일각에선 비난의 소리도 있었지만 진취적이고 모던한 것을 좋아하는 여대생이나 젊은 직장여성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호응을 받았다.
그래서 유행한 것이 이른바 맘보스타일-그 때까지 나팔바지라고 해서 한 것 넓던 바지통이 차츰 좁아지기 시작해서 속칭 「맘보즈봉」이 등장했다.
좁고 꽉끼는 하의에 맞춰 상의는 어깨부분을 돌먼 슬리브나 프렌치 슬리브로 처리함으로써 상체를 강하게 보이도록 표현한 실루엣이 짧게 커트한 헵번형 머리와 어울려 보이시(소년같은)한 매력을 풍겨 주었다. 흔히 사람들은 「유행은 돌고 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요즘 한참 유행하는 배기 바지를 1950년대말부터 1960년대 전반에 걸쳐 10년 가까이 세력을 떨친 맘보바지의 재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유행은 일정한 사이클을 그리며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옛 그대로가 아니라 그 시대 시대의 반영이 반드시 가미되는 법이란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20년전의 맘보바지가 허리부터 히프를 거쳐 발목부분에 이르기까지「입고 꿰맸다」는 속된 표현이 나올만큼 좁고 꽉끼는 형이었던데 비해 요즘의 유행은 무릎아래 부분이 좁아진 것만 같을 뿐 그동안 유행했던 루즈피트를 가미해서 허리에 충분한 주름을 잡아 히프 부분을 풍성하게 살려줌으로써 입기에 편하고 움직이기 좋게 한 점은 큰 차이라 하겠다.
같은 무렵 잠깐 나타났다가 짧게 스러진 유행에 색 드레스가 있다.
세계적 모드의 거장 「크리스티암·디오르」가 그의 생애 최후의 작품으로 1957년도에 내놓은 색드레스는 그이름 자체가 우리말로 옮기면 자루옷이듯 이 옷이 처음 서울거리에 등장했을 때 일반인들의 반응 역시 「꼭 쌀자루 같다」는 것이었다.
「임신복조차도 날씬한 여성이 입어야 아름답다」는 말이 있지만 이 자루옷이야말로 체격이 고운 여성을 위한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어깨서부터 일자로 쭉 내려간 실루엣을 보고 얼핏 체형이 둔탁한 여성들이 자신의 결점을 카무플라지할 수 있으리라고 잘못 판단한데서 오류가 범해졌다.
색 드레스는 자체의 실루엣이 없는 대신 입은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여성다운 곡선미가 살짝살짝 드러남으로써 비로소 실루엣이 참조되는 특수한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속되게 표현해서 절구통을 닮은 둔중한 체격에 쌀자루를 씌웠으나 문자 그대로 꼴불견일 수밖에.
그래서 색 드레스는 거장의 최후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선보인 그 해로 끝장을 본 가장 짧은 유행이란 기록을 남기고 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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